[스크랩]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스라엘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고 실상은 메마르고 척박한 땅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경우에도 우기가 거의 끝날 무렵인 3월, 특히 중순경에는 네게브나 사해 지역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칠고 메마른 유대 광야조차도 푸르러 지고 노란 들꽃, 빨간 들꽃이 수천 송이씩 필 때도 있다.
그러나 이 아름다움이 4월에 들어서면서 급격히 사라지는데, 특히 히브리어로 '샤라브'(아랍어로 '함씬')라는 뜨거운 바람이 불어 오면 (샤라브는 구약에도 나오는데 이사야 49장 10절에서 '볕'으로, 35장 7절에서 '뜨거운 사막'으로 번역했다.) 이 아름다움은 곧 사라진다.
이스라엘의 자연이 아름다운 때는 일년 중 약 한 달 정도이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한국 순례객들은 아름답고 풀이 많은 이스라엘 보다는 메마르고 극히 황량해 보이는 이스라엘을 보면서 "어떻게 이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는데, 이는 성서를 읽으면서 이스라엘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아주 아름다운 땅으로 상상하다가 실제로 와서 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고 갖게 되는 의문이며 혼동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그것이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좋은 땅을 의미하는 것일 거라는 막연한 추측을 지워야 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은 좋은 땅을 의미하는 성서 히브리적인 문학적 표현이며, 고대 히브리인들의 속담적인 표현일 따름임을 알아야 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 꼭 필요한 구절이 민수기 16장 13절이다.
민수기 16장의 배경은 광야에서 다단과 아비람 등이 모세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장면으로, 모세의 부름을 거부하면서 그들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큰 고생을 시키는 주제에 왕처럼 행동하려느냐"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먼저 다단과 아비람이 애굽 땅 전체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한 것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야곱 이후 출애굽 때까지 줄곧 살아오던 고센 땅만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럼 고센은 어떤 땅이었기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불리우는가?
그 곳은 목축하기에 좋은 땅이었다. 농사에 적합한 애굽 땅(나일 삼각주)에서 유일하게 목축을 하기에 적합한 땅이 바로 고센 땅이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즉 목축에 적합한 곳에서, 황량한 광야를 인도한 모세를 비난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야곱이 꿈에도 그리던 아들 요셉을 만나러 애굽 땅에 내려가 바로를 알현하러 가기 전, 요셉은 아버지 야곱에게 바로를 만나거든 "우리는 조상 대대로 목축을 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고센 땅에 거하게 해달라고 간청하라"고 권했다.(창 46:28-34)
결국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이 최초에는 목축을 하기에 좋은 땅을 의미하는 관용적인 표현이며, 처음부터 가나안 땅-이스라엘 땅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적인 표현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아브라함이 양과 염소 등을 몰고 다니던 반 유목민이었음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아주 적합한 땅을 약속하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만약 아브라함이 벼농사를 짓는 한국의 농부였다면 하나님께서는 '기름이 흐르는 땅'(기름진 옥토)이라고 표현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목축하기 좋은 땅이 왜 하필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표현 되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또 '목축에 좋은 땅은 꼭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어야만 하는가'라는 의문도 제기될 수 있다. 목축 하기에 좋은 땅, 즉 풀이 많은 땅은 짐승들이 배불리 먹고 잘 자라고 또한 새끼를 많이 낳는다.
새끼를 많이 낳으면 당연히 어미 젖이 많으며, 또 풀이 많은 땅에 역시 꽃도 많고, 꽃이 많으면 꿀(성서의 꿀은 석청을 가리킨다)도 많기 때문에 그러한 표현이 나왔다고 추측 할 수 있다.
실제적으로 이스라엘인들은 이 소와 양의 젖을 주로 버터, 치즈, 우유의 형태로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신32:14)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꼭 가나안 땅만을 의미하는 고유명사적 표현이 아니라, 목축을 하기에 좋은 땅을 관용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구절이 또 있다.
목축업을 하는 사람에게 가장 이상적인 곳은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 될 것이다.
우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을 당연히 축복의 표현으로만 생각하는데, 이 표현을 저주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 이사야서에 있다.
7장21절 이하에서 이사야는 "앗수르 왕이 쳐들어오는 날에는 너희가 버터(젖)와 꿀만 먹게 될 것"이라고 경고의 예언을 하고 있다.
어떻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축복의 땅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저주의 땅도 되는 것일까?
그것은 시대적 상황 차이 때문이다. 족장 시대부터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이전까지의 히브리인들은 목축을 하던 반 유목민들이었으므로 그 때는 젖과 꿀이 풍성한 것이 그들이 원하는 바이며 또한 축복의 결과로 보았다. 그러나 전쟁에 패함에 따라 모두 포로로 끌려가고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농경문화와 목축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농경지는 황폐해지고 황무지가 되었지만, 모두 포로로 잡혀가고 남아 있는 사람이 너무나도 적기 때문에 그들은 야생 꿀을 채취하여 먹을 수 있고, 몇마리의 가축의 젖으로도 뻐터를 만들수 있는 시대가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리니 그 내에는 젖이 많으므로 뻐터를 먹을 것이라. 무릇 그 땅 가운데 남아있는 자는 뻐터와 꿀을 먹으리라"(사7:21-22)
그러므로 이사야 예언자의 이 말씀은 '그 날에 농토가 완전히 파괴되고 황폐해져 밀 농사를 짓지 못하고, 그래서 빵을 먹지 못하게 되고 황폐해진 농토에 잡초가 자라고, 그것을 암소, 양, 염소들이 먹을 것' 이라는 것이다.
모두 포로로 잡혀가고 남은 자가 얼마 안되므로, 그들이 "젖과 꿀을 먹게된다"는 표현은 곧 저주의 표현으로도 사용되어진 것이다.
목축과 유목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풍성한 젖과 꿀이 축복이었다.
그러나 정착적인 생활을 시작한 후에, 전쟁에서 패하고 황폐한 땅에서 남은 사람이 거의 없어져서, 젖과 꿀을 먹게되는 것은 저주가 된다.
하지만 성서에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표현이 가나안 땅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는 아름다운 산천을 가리키는 금수강산이라는 말을 우리 한국인들은 한반도 즉 우리나라를 지칭하는 고유명사인 양 생각하는 것과 같다.
결론적으로 말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은 원래 목축을 하기에 좋은 땅을 의미하는 히브리적 표현으로 이스라엘 땅이나 가나안땅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나안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결론적으로 말하여 종말론적인 개념이다. 그래서 가나안 땅은 종말론적으로 해석되기도 하였다.(히3:16-18)
젖은 희생적인 요소를 의미하며, 그것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또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복한 상태의 표현은 '모유가 풍성하게 나오는 것'이었으며, "젖"은 추상적인 축복과 진리의 표현, 구원의 방편으로 사용되었다.
"네 아비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원천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창 49:25)
또 한편 "젖"은 종말적인 경고의 저주적인 개념으로도 사용되었다.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눅23;29)
한편 "젖"은 구원에 이르는 한 방편이 되어진다.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
다음의 성경본문은 "땅"이 아니라 "꿀과 엉긴 젖이 흐르는 강"을 말하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 큰 불행이며 저주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는 강 곧 꿀과 엉긴 젖이 흐르는 강을 보지 못할 것이요"(욥20:17)
에례미야서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이며, 열조에게 한 언약의 개념으로 기록되어 있다.
"내가 또 너희 열조에게 한 맹세 곧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루리라 한 것인데 오늘날이 그것을 증거하느니라 하라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아멘 여호와여 하였노라"(렘11;5)
즉 젖과 꿀이 흐른다는 것은 문자적이 아니라, 종말적인 개념, 구원적인 개념으로 사용된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땅이나 가나안지역은 더 이상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믿는 자들의 영역이며, 그들이 가야할 곳이다.
그러므로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게 된다.(마11;12)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였더라면, 가나안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었을 것이며, 그곳은 그들에게 진정한 안식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잔정한 안식처가 우리에게 남아있다.
"만일 여호수아가 저희에게 안식을 주었더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히4:8-9)
우리가 가야할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 어딘인가?
우리는 그곳을 향하여 가야만 하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곳을 가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출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의미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작성자 dsmed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