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김재준 목사
그리스도중심 사랑·희생으로 사회변혁 주장… 19기 장공 김재준 목사의 생애와 신학
그리스도중심 사랑·희생으로 사회변혁 주장… 19기 장공 김재준 목사의 생애와 신학
장공(長空) 김재준(1901∼87) 목사의 19주기 기념예배가 24일 한신대 신학전문대학원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학문과 신앙의 자유를 주창하고 한국 교회의 주체적 자의식을 강조한 김 목사를 회고하며 유지를 받들 것을 다짐했다.
장공은 진보적 사회참여 신학의 전통을 세운 인물로 유명하다. 강원용 목사는 장공을 목사,신학자,한학자,문필가,사회운동가,자유를 추구한 풍류가 등으로 지칭한 적이 있다. 조향록 목사도 “장공은 장로교 신학의 원류를 지키면서도 다양한 사상 편력을 거치며 한 시대를 풍미한 구도자였다”고 평가했다. 장공 19주기를 맞아 그의 신학사상과 생활철학을 살펴본다.
◇장공의 신학 여정=함북 경흥의 유교 집안에서 태어난 장공은 한문과 서예에 능통했다. 금융조합 서기라는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1920년 상경,YMCA의 시국강좌에 참여하고 현대서적을 탐독하면서 기독교를 접하게 됐다. 이듬해 승동교회에서 열린 김익두 목사의 부흥회에서 회심한 뒤 신학자의 길을 걸었다. 일본 도쿄 청산학원(아오야마신학교)에서는 자유주의 신학,미국 프린스턴 신학교에서는 보수주의 신학,웨스턴신학교에서는 그리스도 중심 신학을 공부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한국에 온 초창기 선교사들이 근본주의 신학만을 소개한 것과 달리 미국에서 배운 다양한 신학사조를 국내에 소개했다.
신사참배와 관련,서양 선교사가 이끌던 평양신학교가 문을 닫자 장공은 유학 동기인 송창근 등과 함께 ‘조선신학교’를 개교했다. 서양 선교사들이 돌아가 재정 지원이 끊긴 상태에서 조선의 목회자를 육성하는 자주적 신학교육기관 설립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장공은 신학교에서 성서비평학을 소개하는 동안 격렬한 신학논쟁에 휩쓸렸다. 보수적인 한국 교회는 급기야 그를 파면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는 뜻을 함께 하는 목회자들과 ‘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을 창설하고 한국신학대학(현 한신대학교)을 설립했다.
장공은 성서역사비평학과 그리스도 중심 신학을 내세우며 혁명적인 사회변혁보다는 사랑과 희생에 따른 사회변혁을 주장했다. 그가 사회참여 운동에 뛰어든 것은 1965년 굴욕적인 한·일수교 이후였다. 유신헌법 반대와 반독재 민주화,통일운동에 참여하면서 민주주의와 평화,인권 수호에도 앞장섰다. 또 ‘교회의 사회화’를 주도했다. 그는 후배 신학자들에게 “늘 그리스도의 마음이 살아있는 신학을 공부하라”고 권면했다. 장공은 2002년 12월 민주화와 신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됐다.
한편 그는 보수주의신학자들에 의해 ‘성경파괴자’ ‘신신학자’로 폄하되기도 했다.
연세대 신과대 교수였던 유동식의 평가를 음미해볼 만하다. “진보주의적 역사적 성서 이해는 급변하는 현대 역사속에 사는 우리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해주는 일에 공헌했다. 그러나 한편 사회·정치적 연구에 치우친 나머지 초월적인 하나님의 종교적 차원이 가려질 위험성이 또한 개재돼 있다. 여기에 공헌과 위험성을 함께 가진 한국 진보주의신학의 초석이 있다.”
길선주 목사가 강조한 새벽기도를 위해 새벽마다 산에 올랐던 열심,한경직 목사처럼 성 프란체스코를 존경하며 청빈하게 꾸려간 삶,꿈이나 환상 등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발견하려는 장공의 태도 등에선 그의 구도자적 생활을 엿볼 수 있다.
◇장공의 생활신앙=장공의 신학은 삶의 신학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그는 “신앙생활이 현실의 삶에서 유리되거나 무관심하게 되면 생명력이 없다”면서 기독인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란 관념적인 믿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신앙은 교리에서 싹터서 생활에서 열매를 맺는다. 생활 없는 믿음은 열매없는 나무”라며 “신앙은 멀리 바라보는 무지개가 아니다”고 설파했다. 그는 또 “생활화한 신앙이란 생활의 전 부분이며 종교가 문화의 일부분이라는 것은 현대인들이 만들어낸 가장 공교한 기만”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조건적인 신비주의는 배격했다. 역사적 기독교에서 이탈한 신비경험은 선을 행하는 능력이 아니라 악마의 도구이자 자기도취의 아편이라는 논리다. 대신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을 변증하기 위한 진정한 생활신앙을 주창했다. 그는 에베소서 1장 21절,골로새서 1장 16절,마태복음 28장 18절 등을 통해 이 땅의 정권이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해서는 안된다며 역사는 절대주권 앞에 반드시 심판받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장공은 또 살아있는 신앙으로 역사를 변혁시켜야 한다는 관점에서 “사회변혁은 한 개인이 독자적으로 전개하는 것이 아니라 동지들이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왕국 건설을 위해 장공은 소위 ‘동지운동’에서 지켜야 할 네 가지 기본원리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것은 서로의 신뢰와 신임,용감한 자기 소신,나누고 순복하는 생활,자기가 속한 직장부터 변화시켜갈 것 등이었다.
그는 기도 없는 사회변혁을 반대했다. “물질적 생활을 좀더 개선하려는 데만 급급하여 사회제도의 개혁만을 생각하고 ‘기도도 군소리며 교리도 추상적인 유희다. 다만 빵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 시급할 뿐’이라고 외치는 일이 많다. 이는 극단의 주장이다”는 말에서 보듯 신앙의 자기정체성과 사회변혁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쓴 장공의 흔적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특히 장공의 신앙고백은 그가 쓴 찬송가 261장 ‘어둔 밤 마음에 잠겨’ 가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장공은 현대신학의 물줄기를 통해 교회 갱신에 힘쓴 목회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 앞에 동등하게 고귀한 존엄성이 주어진다고 강조한 장공의 인간 자유의 신학은 앞으로도 큰 울림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