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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자유주의와 사회복지*
뽀종이
2006. 9. 24. 23:41
신자유주의와 사회복지*
남구현 (한신대 사회복지학)
1.
적어도 90년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현시기 세계는 자본주의적 '지구화', 즉 말 그대로의 자본의 전 지구적 운동에 의해 특징지워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이와 같은 최근의 경향을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공세가 진행되는 배경으로 파악하고, 이러한 변화과정을 사회정책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기로 한다. 신자유주의와 사회정책의 관련성을 살펴보기 전에, 일단 지구화와 관련된 이론적 쟁점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2.
자본은 그 출생기에서부터 세계적이었다. 자본관계의 전지구적 확장이라는 새로운 경향은 기존의 제국주의론을 재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지구자본에 상응하는 적합한 형태의 국가는 민족국가이지만, 가치(즉 상품)는 출발부터 세계어에 능숙했고, 자본의 운동영역은 애초부터 국제적이었다. 자본의 출생사는 따라서 내부적으로는 민족국가가, 외부적으로는 세계시장이 형성되는 역사이다. 세계시장의 형성은 곧 자본의 국제화를 의미하며, 이는 다시 비자본주의 나라들의 주변화 및 식민지화를 의미하였다. 다시 말하지면 이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제국주의-(신)식민주의-관계가 수립되는 과정이었다. 제국주의는 이때 자본주의의 중심부와 주변부에 속한 (민족)국가들 사이에 한나라가 다른 나라의 이해관계 속에 포섭되어 있을 때 나타나는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및 때로는 군사적으로 표현되는 전 사회적인 지배-종속관계로 규정할 수 있다. 한 나라 내부의 모순이 외화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세계적으로 확장되었으며,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시대에 비로소 전 세계사적 문제가 되었다. 소위 전지구화는 세계의 자본주의화에 다름 아니며, 이는 곧 주변국가들이 제국주의 중심부 국가들의 가치증식욕구(Kapitalverwertungsinteresse)아래 포섭되어지는 과정이었다.
이때 중심부 국가들이 주변부를 포섭하는 방식에는 아무런 댓가없이 주변국가를 약탈하는 경우와 정치 군사적인 강제력을 동원하여 상품판매지 및 원료 공급지로서 주변부를 강제하는 경우, 그리고 상품, 화폐, 자본 등의 경제적 범주를 매개로하여 제국주의적 관계가 재생산되는 경우가 구분될 수 있다. 본원적 축적단계에서 내부적으로는 폭력적으로 자본주의적 계급관계가 형성되면서 외부적으로는 세계각지에서 교화과정에 의한 대가없이 약탈하는 관계(Raubverhaltnis)가 주도적이었다. 이후 상업자본 및 초기자본주의 시기에는 소위 부등가 교환의 형태로 상업자본주의적인 사취에 의한 상품교환(Warenaustausch)이 주도적인 형태로 되었으며, 산업혁명 이래 산업자본이 형성되면서 비로소 산업생산력의 우위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교역의 주도권을 보장하게 되었다. 이제 등가교환에 의해 가치매개적(wertm癌ig)으로 제국주의적인 초과이윤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와 같이 자본관계가 세계적인 차원으로 모순적으로 외화되는 과정과 맞물리면서 제국주의 관계는 정치군사적인 폭력과 경제적인 상품, 화폐, 자본 등을 매개로 재생산되며, 어느 범주가 보다 중요하게 되는지는 해당시기의 중심부 자본의 가치증식조건에 의해 기본적으로 규정된다. 이전에는 정치적 지배를 주로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정치적 독립은 유지하면서 경제력을 바탕으로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경우(신식민지, 비공식적 제국주의)가 일반적이다. 2차대전 이전까지의 Pax Britannica, 2차대전 이후의 Pax Americana, 그리고 최근 이전의 질서가 균열을 일으키며 Pax Germania 와 Pax Nipponica의 지역적 주도권 아래 새로이 형성되는 삼각질서 역시 세계적 차원의 가치증식조건의 변화와 관련하여 설명되어질 수 있다.
지금의 지구적 자본운동은 몇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다국적 및 초국적 기업의 등장, 생산기지의 현지화 등 세계 경제의 지구화는 이제까지 민족국가적 틀과 이에 바탕을 둔 국제무역의 기존 질서의 변화를 강제하였다. 자유무역주의와 다자간 협상에 기초하여 관세 및 상품교역 뿐만 아니라 자본투자 및 각국의 정치적 개입전략까지 강제력을 가지고 규율하려는 새로운 국제질서(ex. WTO)의 등장, '세계시장에서의 무한 경쟁' 등의 구호는 이러한 경향의 표현이다.
2) 이러한 경향에 따라 이제까지 민족국가적 단위로 조직된 세계정치질서 안에서의 국가주권의 약화와, 생산조직의 변화('토요타주의', '군살빼기 생산 lean production'), 나아가서는 노동정책 및 사회정책적인 국가 개입전략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교통 및 통신수단의 발달에 따라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도 지구화가 나타나고 있다.
3) 이차대전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가 세계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확실히 관철되어 왔다면, 이러한 팍스아메리카 체제는 이제 미국, 일본, 독일 등이 각기 아메리카, 아시아, 유럽의 지역권에 기반을 두고 세계시장에서의 헤게모니를 다투는 삼두체제로 바뀌었다. 세계정치의 다극화와 함께 80년대 말 90년대초를 경유하면서 본격화하는 유럽연합과 관련된 논의는 이러한 변화의 한 축이다.
이와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저개발의 개발'에 의해 경제발전이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어져오던 자본주의 주변부에서 60년대 이래 자본주의적 발전이 가능해져, 이제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자본관계가 형성되었다는 점이 중요한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제까지 주변부는 중심부에서 자본주의적으로 생산된 상품의 교역지, 내지는 원료 공급지로서 주로 상품, 화폐를 매개로 세계 자본주의에 편입되었다면, 이제는 직접 자본주의적 생산이 가능한 전지구적 분업체계의 일부분으로서 기능한다는 것이다 (주변부의 자본주의적 '생산'구조 내에로의 편입). 이에 더해 현존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인한 소위 전후 동서냉전질서의 붕괴에 따라 양대 진영간의 외적인 대립이 사라지면서, 자본운동의 말 그대로의 전지구화가 가능하게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간 이데올로기적 통합요소로 기능해온 반공주의 역시 의미를 상실하게 되면서 자본주의적 모순의 필연적인 결과인 내적인 계급대립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발현하게 되었다.
지금의 지구화가 중심부 자본의 헤게모니아래 진행되고 있는 한, 지구화의 결과 기존의 모순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새로운 방식으로 운동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이 제공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즉, 자본관계와 제국주의관계는 지양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극소전자혁명, 통신혁명 등의 결과 전지구적으로 발전한 정보소통구조에도 불구하고(인터넷, '지구는 하나'), 유통되는 정보의 양이나 내용을 보면 기존의 자본의 논리, 제국주의 논리가 바로 그대로 관철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
제국주의론을 경유하여 신자유주의와 사회복지의 관련성을 논의해야 하는 이유는 최근의 신자유주의적인 공세는 자본의 지구화 경향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이 지속된다면, 민족국가의 틀내에서의 국가의 사회정책적 개입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기존의 사회국가/복지국가적 개입모델을 가능하게했던 기본적인 지형이 바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신보수주의적 반동에 의해 공격당하기 전까지 유럽의 각 국가들은 2차 대전 이후 복지국가적 발전을 도모해 왔다. 이 경우 이론적 토대를 이루었던 것이 신자유주의적 신조에 기초한 사회적 시장경제론이었다.<주1>
사회적 시장경제론은 구체적인 정책 운영과정 속에 현실화되었다. 영국의 경우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에 입각한 베버리지의 구상에 기초해 발전한 전후의 영국식 복지국가는 한편에서는 파시즘, 다른 한편에서는 코뮤니즘에 대해서 영국의 체제우월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획이었으며, 시장법칙의 무자비한 관철로 인해 나타나는 폐혜를 국가의 복지정책적 개입을 통해 경감시킴으로써 '전국민 최저선(national minimum)'을 보장해 주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사회적 시장경제는 기민련(CDU, 기독교 민주연합)정치인이었던 에르하르트(L. Erhard)가 경제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1949년에서 1963년 사이에 기민련/기사련(CSU, 기독교 사회연합) 정부의 경제정책의 기조를 이루었으며, 독일 헌법에 나타나는 '사회국가(Sozialstaat)'의 개념에 상응하면서, 라인강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전후의 서독 건설이래 소위 독일 모델의 기조를 이루었다. 독일 자본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노사협조주의에 기초하여 자본주의의 기본틀은 유지하면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사회정책적으로 보완한다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기본 구도는 70년대의 사민당 정부에서 국가의 케인즈주의적인 개입주의가 보다 강조되면서 이어진다. 그리하여 공적부조, 사회보험, 사회적 수당을 중심으로한 대부분의 제도가 확립되면서 유럽의 제국가들 대다수가 GNP의 20%이상, 정부지출의 50% 내외가 사회적 지출이 될 정도로 사회복지가 발전하였다.
70년대의 경제위기와 자본의 반동 80년대에 들어와서는 국가에 의한 사회정책적 개입주의가 지나쳤다고 간주하는 신보수주의자들이 등장하여 시장의 원칙을 다시 강조하면서 국가의 복지지출에 대해 공격하였다.(소위 복지국가 위기론). 복지국가에 대한 공격은 '작지만 강한 정부'를 모토로 민영화, 군살 빼기 신경영전략과 함께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 극적인 복지삭감이 이루어 지지는 않았고, 단지 사회적 지출 증가율이 둔화 내지는 정체되었다. 즉, 복지국가적 발전에 제동이 걸린 정도의 효과는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한번 도입된 사회복지제도는 거꾸로 돌릴 수 없는 불가역성(irreversibility)을 그 자체로서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와 국민 대중의 저항이 보수적 반동을 막아낸 것으로 볼 수 있다.(영국의 인두세에 대한 저항, 이탈리아의 연금삭감에 대한 대중투쟁, 독일판 고통분담에 대한 노조의 저항, 프랑스의 공공부문 투쟁등).
노동자와 일반 대중의 임금저하, 조세증가, 복지혜택의 축소 등을 담보로 시도되었던 유럽 각국의 '내부적 군살 빼기'는 좌절되었다. 최근 독일 자본의 헤게모니 아래 진행되고 있는 유럽통합과 관련된 논의는 앞에서 언급된 변화된 세계적인 축적조건의 변화와 관련해, 새로운 자본운동의 조건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모순의 외화) 이제까지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협정(GATT)을 넘어서 자유무역주의와 국가 사이의 다자간 협상에 기초해 자본 및 국가의 경제정책까지 - 나아가서는 노동 및 환경조건까지 - 규제하려는 WTO의 결성과 NAFTA, 유럽연합 등의 경제의 권역화를 틀거리로 전개되는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의 공세는 이전의 일국 민족국가적 틀을 전제로 전개되었던 신자유주의와 구분되는 지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비교정치적 내지는 비교사회정책적 관점에서 분석되어온 사회국가/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요구한다. 지금 유럽연합과 관련된 논의를 주도해 나가고 있는 독일의 경우를 보면, 흔히 사회국가(Sozialstaat)로 불리우는 독일모델은 독일자본(다국적기업)의 투자전략과 노조의 분배전략 사이에서 사회국가적 계급타협을 기초로 국가가 신자유주의 및 사회민주주의적 전략을 매개로 스스로를 세계시장에서 관철시키는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새로운 대안이 제시되지 않는 한, 국가, 자본 그리고 노조 등의 제도화된 삼자동맹에 기초한 타협과 조정의 메카니즘으로서의 이제까지의 복지국가/사회국가모델은 앞으로도 중심부 자본의 지구화 전략의 근간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세계적인 축적조건의 변화에 따라 독일 역시 유럽연합이라는 새로운 운동영역 속에서 대응전략을 모색할 것을 강요당하면서, 기존의 사회국가적 문제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제들(사회적 빈곤, 대량실업, 환경악화, 노동시장의 교란 등)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문제들은 - 유럽연합과 관련된 논의들과 함께 - 기존의 정치세력들 내지는 사회운동세력들이 준거하고 있는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대처방안이 강구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지금의 논의를 보면, 신보수주의적 야윈 국가(schlanker Staat)를 전 유럽적 차원에서 수립하려는 시도와(ex. 화폐통합의 전제조건으로서의 국가의 재정적자 기준조항), 사회적 시장경제 내지는 사회적 공간(espace social)을 전체 유럽적 차원으로 확대하려는 시도들(유럽연합의 노동정책과 관련된 제안들, 사회적 조항과 관련된 논의들, 사회헌장)이 다양하게 혼재되어 있다. 나아가서는 자유방임과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식의 포스트적 발전 경향은 지역과 계급간의 불평등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재분배를 위한 국가의 기능은 지방정부에서부터 유럽연합, 나아가서는 세계 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에 분산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는 등 유럽연합을 둘러싼 논의는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까지 일국단위에서 구사되던 전략들이 유럽의 장에서 확산되어 적용될 경우 일국단위에서 해결되지 않은 모순들은 단지 확대된 차원에서 재생산될 것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상품교역의 장의 확대, 통화 통합, 국가 통합의 제 과정에서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계급관계가 어떻게 재편되는가가 관건일 것이다. 자본은 단순한 상품유통, 화폐, 축적된 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과 자본 사이의 '관계'이며, 이 관계는 전 사회적인 계급관계 속에서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국가 역시 기본적으로는 계급관계를 재생산하기 위한 정치적 대리자라고 할 때, 민족국가가 앞으로 해체될 것인가 아닌가, 유럽국가는 어떠한 상을 가지게 될 것인가하는 질문 역시 계급관계가 전 유럽적 차원에서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져 있다.
<미주>
*. 이글은 졸고 [지구화와 독일의 사회국가](미발표초고)에 서술된 내용을 기초로 관련 부분을 발제를 위해 재구성한 것이다.
1) 경제학의 유파로서 신자유주의는 역사적으로 볼 때, 1920년대 말의 세계 대공황과 이에 이어진 파시즘적인 계획경제에 대한 반발로서 생겨났다. 신자유주의에 따르면, 시장과 경쟁의 원칙을 도입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의 자기조정력이 회복될 수 있으며,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은 시장에서의 경쟁메카니즘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외부적 조건을 확보하는 데에만 한정시켜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구성원의 인간적인 삶이 시장메카니즘만으로는 보장되지 못함으로, 국가가 시민의 복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스스로를 자유방임주의에 기초한 고전적 자유주의자들과는 구분한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신조에 기초하고 있어서, 개인의 자유에 기초한 시장경제에서 사회의 기본 원칙을 찾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개인의 자유와 경쟁을 바탕으로 개인의 창의력을 최재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시장을 중심으로한 경제정책적 영역과, 시장경제적인 업적을 기초로 사회구성원의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정책적 영역이 결합된 것이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것이다. 이때 사회정책은 시장경제의 경쟁력이 향상되도록 조정되어야 하며, 경쟁력의 확보는 거꾸로 사회정책을 실시하기 위한 물질적 토대가 된다. 그러나 기회의 평등, 사회적 안정 그리고 사회적 필요충족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사회정책적인 개입주의는 항상 폐혜를 수반하므로, 사회정책은 항상 자율적인 시장경제의 부수물로서 이차적인 지위에 머물러야한다고 주장된다. 즉, 개인의 원칙(Individualprinzip)은 사회의 원칙(Sozialprinzip)에 우선하며, 보조의 원칙(Subsidiaritatsprinzip)은 연대의 원칙(Solidaritatsprinzip)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남구현 (한신대 사회복지학)
1.
적어도 90년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현시기 세계는 자본주의적 '지구화', 즉 말 그대로의 자본의 전 지구적 운동에 의해 특징지워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이와 같은 최근의 경향을 신자유주의의 새로운 공세가 진행되는 배경으로 파악하고, 이러한 변화과정을 사회정책적 관점에서 분석해 보기로 한다. 신자유주의와 사회정책의 관련성을 살펴보기 전에, 일단 지구화와 관련된 이론적 쟁점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2.
자본은 그 출생기에서부터 세계적이었다. 자본관계의 전지구적 확장이라는 새로운 경향은 기존의 제국주의론을 재구성할 것을 요구한다. 지구자본에 상응하는 적합한 형태의 국가는 민족국가이지만, 가치(즉 상품)는 출발부터 세계어에 능숙했고, 자본의 운동영역은 애초부터 국제적이었다. 자본의 출생사는 따라서 내부적으로는 민족국가가, 외부적으로는 세계시장이 형성되는 역사이다. 세계시장의 형성은 곧 자본의 국제화를 의미하며, 이는 다시 비자본주의 나라들의 주변화 및 식민지화를 의미하였다. 다시 말하지면 이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제국주의-(신)식민주의-관계가 수립되는 과정이었다. 제국주의는 이때 자본주의의 중심부와 주변부에 속한 (민족)국가들 사이에 한나라가 다른 나라의 이해관계 속에 포섭되어 있을 때 나타나는 정치경제적, 사회문화적 및 때로는 군사적으로 표현되는 전 사회적인 지배-종속관계로 규정할 수 있다. 한 나라 내부의 모순이 외화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이 세계적으로 확장되었으며, 제국주의는 자본주의 시대에 비로소 전 세계사적 문제가 되었다. 소위 전지구화는 세계의 자본주의화에 다름 아니며, 이는 곧 주변국가들이 제국주의 중심부 국가들의 가치증식욕구(Kapitalverwertungsinteresse)아래 포섭되어지는 과정이었다.
이때 중심부 국가들이 주변부를 포섭하는 방식에는 아무런 댓가없이 주변국가를 약탈하는 경우와 정치 군사적인 강제력을 동원하여 상품판매지 및 원료 공급지로서 주변부를 강제하는 경우, 그리고 상품, 화폐, 자본 등의 경제적 범주를 매개로하여 제국주의적 관계가 재생산되는 경우가 구분될 수 있다. 본원적 축적단계에서 내부적으로는 폭력적으로 자본주의적 계급관계가 형성되면서 외부적으로는 세계각지에서 교화과정에 의한 대가없이 약탈하는 관계(Raubverhaltnis)가 주도적이었다. 이후 상업자본 및 초기자본주의 시기에는 소위 부등가 교환의 형태로 상업자본주의적인 사취에 의한 상품교환(Warenaustausch)이 주도적인 형태로 되었으며, 산업혁명 이래 산업자본이 형성되면서 비로소 산업생산력의 우위는 세계적인 차원에서 교역의 주도권을 보장하게 되었다. 이제 등가교환에 의해 가치매개적(wertm癌ig)으로 제국주의적인 초과이윤을 획득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와 같이 자본관계가 세계적인 차원으로 모순적으로 외화되는 과정과 맞물리면서 제국주의 관계는 정치군사적인 폭력과 경제적인 상품, 화폐, 자본 등을 매개로 재생산되며, 어느 범주가 보다 중요하게 되는지는 해당시기의 중심부 자본의 가치증식조건에 의해 기본적으로 규정된다. 이전에는 정치적 지배를 주로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정치적 독립은 유지하면서 경제력을 바탕으로 간접적으로 지배하는 경우(신식민지, 비공식적 제국주의)가 일반적이다. 2차대전 이전까지의 Pax Britannica, 2차대전 이후의 Pax Americana, 그리고 최근 이전의 질서가 균열을 일으키며 Pax Germania 와 Pax Nipponica의 지역적 주도권 아래 새로이 형성되는 삼각질서 역시 세계적 차원의 가치증식조건의 변화와 관련하여 설명되어질 수 있다.
지금의 지구적 자본운동은 몇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다국적 및 초국적 기업의 등장, 생산기지의 현지화 등 세계 경제의 지구화는 이제까지 민족국가적 틀과 이에 바탕을 둔 국제무역의 기존 질서의 변화를 강제하였다. 자유무역주의와 다자간 협상에 기초하여 관세 및 상품교역 뿐만 아니라 자본투자 및 각국의 정치적 개입전략까지 강제력을 가지고 규율하려는 새로운 국제질서(ex. WTO)의 등장, '세계시장에서의 무한 경쟁' 등의 구호는 이러한 경향의 표현이다.
2) 이러한 경향에 따라 이제까지 민족국가적 단위로 조직된 세계정치질서 안에서의 국가주권의 약화와, 생산조직의 변화('토요타주의', '군살빼기 생산 lean production'), 나아가서는 노동정책 및 사회정책적인 국가 개입전략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교통 및 통신수단의 발달에 따라 사회문화적인 차원에서도 지구화가 나타나고 있다.
3) 이차대전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가 세계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확실히 관철되어 왔다면, 이러한 팍스아메리카 체제는 이제 미국, 일본, 독일 등이 각기 아메리카, 아시아, 유럽의 지역권에 기반을 두고 세계시장에서의 헤게모니를 다투는 삼두체제로 바뀌었다. 세계정치의 다극화와 함께 80년대 말 90년대초를 경유하면서 본격화하는 유럽연합과 관련된 논의는 이러한 변화의 한 축이다.
이와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저개발의 개발'에 의해 경제발전이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어져오던 자본주의 주변부에서 60년대 이래 자본주의적 발전이 가능해져, 이제는 전지구적 차원에서 자본관계가 형성되었다는 점이 중요한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제까지 주변부는 중심부에서 자본주의적으로 생산된 상품의 교역지, 내지는 원료 공급지로서 주로 상품, 화폐를 매개로 세계 자본주의에 편입되었다면, 이제는 직접 자본주의적 생산이 가능한 전지구적 분업체계의 일부분으로서 기능한다는 것이다 (주변부의 자본주의적 '생산'구조 내에로의 편입). 이에 더해 현존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인한 소위 전후 동서냉전질서의 붕괴에 따라 양대 진영간의 외적인 대립이 사라지면서, 자본운동의 말 그대로의 전지구화가 가능하게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간 이데올로기적 통합요소로 기능해온 반공주의 역시 의미를 상실하게 되면서 자본주의적 모순의 필연적인 결과인 내적인 계급대립은 전지구적 차원에서 발현하게 되었다.
지금의 지구화가 중심부 자본의 헤게모니아래 진행되고 있는 한, 지구화의 결과 기존의 모순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새로운 방식으로 운동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이 제공되는 것에 불과할 것이다. 즉, 자본관계와 제국주의관계는 지양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극소전자혁명, 통신혁명 등의 결과 전지구적으로 발전한 정보소통구조에도 불구하고(인터넷, '지구는 하나'), 유통되는 정보의 양이나 내용을 보면 기존의 자본의 논리, 제국주의 논리가 바로 그대로 관철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
제국주의론을 경유하여 신자유주의와 사회복지의 관련성을 논의해야 하는 이유는 최근의 신자유주의적인 공세는 자본의 지구화 경향과 맞물려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이 지속된다면, 민족국가의 틀내에서의 국가의 사회정책적 개입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기존의 사회국가/복지국가적 개입모델을 가능하게했던 기본적인 지형이 바뀌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신보수주의적 반동에 의해 공격당하기 전까지 유럽의 각 국가들은 2차 대전 이후 복지국가적 발전을 도모해 왔다. 이 경우 이론적 토대를 이루었던 것이 신자유주의적 신조에 기초한 사회적 시장경제론이었다.<주1>
사회적 시장경제론은 구체적인 정책 운영과정 속에 현실화되었다. 영국의 경우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에 입각한 베버리지의 구상에 기초해 발전한 전후의 영국식 복지국가는 한편에서는 파시즘, 다른 한편에서는 코뮤니즘에 대해서 영국의 체제우월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획이었으며, 시장법칙의 무자비한 관철로 인해 나타나는 폐혜를 국가의 복지정책적 개입을 통해 경감시킴으로써 '전국민 최저선(national minimum)'을 보장해 주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에는 사회적 시장경제는 기민련(CDU, 기독교 민주연합)정치인이었던 에르하르트(L. Erhard)가 경제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1949년에서 1963년 사이에 기민련/기사련(CSU, 기독교 사회연합) 정부의 경제정책의 기조를 이루었으며, 독일 헌법에 나타나는 '사회국가(Sozialstaat)'의 개념에 상응하면서, 라인강의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전후의 서독 건설이래 소위 독일 모델의 기조를 이루었다. 독일 자본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노사협조주의에 기초하여 자본주의의 기본틀은 유지하면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사회정책적으로 보완한다는 사회적 시장경제의 기본 구도는 70년대의 사민당 정부에서 국가의 케인즈주의적인 개입주의가 보다 강조되면서 이어진다. 그리하여 공적부조, 사회보험, 사회적 수당을 중심으로한 대부분의 제도가 확립되면서 유럽의 제국가들 대다수가 GNP의 20%이상, 정부지출의 50% 내외가 사회적 지출이 될 정도로 사회복지가 발전하였다.
70년대의 경제위기와 자본의 반동 80년대에 들어와서는 국가에 의한 사회정책적 개입주의가 지나쳤다고 간주하는 신보수주의자들이 등장하여 시장의 원칙을 다시 강조하면서 국가의 복지지출에 대해 공격하였다.(소위 복지국가 위기론). 복지국가에 대한 공격은 '작지만 강한 정부'를 모토로 민영화, 군살 빼기 신경영전략과 함께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 극적인 복지삭감이 이루어 지지는 않았고, 단지 사회적 지출 증가율이 둔화 내지는 정체되었다. 즉, 복지국가적 발전에 제동이 걸린 정도의 효과는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한번 도입된 사회복지제도는 거꾸로 돌릴 수 없는 불가역성(irreversibility)을 그 자체로서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와 국민 대중의 저항이 보수적 반동을 막아낸 것으로 볼 수 있다.(영국의 인두세에 대한 저항, 이탈리아의 연금삭감에 대한 대중투쟁, 독일판 고통분담에 대한 노조의 저항, 프랑스의 공공부문 투쟁등).
노동자와 일반 대중의 임금저하, 조세증가, 복지혜택의 축소 등을 담보로 시도되었던 유럽 각국의 '내부적 군살 빼기'는 좌절되었다. 최근 독일 자본의 헤게모니 아래 진행되고 있는 유럽통합과 관련된 논의는 앞에서 언급된 변화된 세계적인 축적조건의 변화와 관련해, 새로운 자본운동의 조건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모순의 외화) 이제까지의 관세 및 무역에 관한 협정(GATT)을 넘어서 자유무역주의와 국가 사이의 다자간 협상에 기초해 자본 및 국가의 경제정책까지 - 나아가서는 노동 및 환경조건까지 - 규제하려는 WTO의 결성과 NAFTA, 유럽연합 등의 경제의 권역화를 틀거리로 전개되는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의 공세는 이전의 일국 민족국가적 틀을 전제로 전개되었던 신자유주의와 구분되는 지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비교정치적 내지는 비교사회정책적 관점에서 분석되어온 사회국가/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새로운 분석을 요구한다. 지금 유럽연합과 관련된 논의를 주도해 나가고 있는 독일의 경우를 보면, 흔히 사회국가(Sozialstaat)로 불리우는 독일모델은 독일자본(다국적기업)의 투자전략과 노조의 분배전략 사이에서 사회국가적 계급타협을 기초로 국가가 신자유주의 및 사회민주주의적 전략을 매개로 스스로를 세계시장에서 관철시키는 것으로 특징지워진다. 새로운 대안이 제시되지 않는 한, 국가, 자본 그리고 노조 등의 제도화된 삼자동맹에 기초한 타협과 조정의 메카니즘으로서의 이제까지의 복지국가/사회국가모델은 앞으로도 중심부 자본의 지구화 전략의 근간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세계적인 축적조건의 변화에 따라 독일 역시 유럽연합이라는 새로운 운동영역 속에서 대응전략을 모색할 것을 강요당하면서, 기존의 사회국가적 문제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제들(사회적 빈곤, 대량실업, 환경악화, 노동시장의 교란 등)에 직면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문제들은 - 유럽연합과 관련된 논의들과 함께 - 기존의 정치세력들 내지는 사회운동세력들이 준거하고 있는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대처방안이 강구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지금의 논의를 보면, 신보수주의적 야윈 국가(schlanker Staat)를 전 유럽적 차원에서 수립하려는 시도와(ex. 화폐통합의 전제조건으로서의 국가의 재정적자 기준조항), 사회적 시장경제 내지는 사회적 공간(espace social)을 전체 유럽적 차원으로 확대하려는 시도들(유럽연합의 노동정책과 관련된 제안들, 사회적 조항과 관련된 논의들, 사회헌장)이 다양하게 혼재되어 있다. 나아가서는 자유방임과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식의 포스트적 발전 경향은 지역과 계급간의 불평등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재분배를 위한 국가의 기능은 지방정부에서부터 유럽연합, 나아가서는 세계 기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준에 분산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는 등 유럽연합을 둘러싼 논의는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까지 일국단위에서 구사되던 전략들이 유럽의 장에서 확산되어 적용될 경우 일국단위에서 해결되지 않은 모순들은 단지 확대된 차원에서 재생산될 것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상품교역의 장의 확대, 통화 통합, 국가 통합의 제 과정에서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계급관계가 어떻게 재편되는가가 관건일 것이다. 자본은 단순한 상품유통, 화폐, 축적된 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과 자본 사이의 '관계'이며, 이 관계는 전 사회적인 계급관계 속에서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국가 역시 기본적으로는 계급관계를 재생산하기 위한 정치적 대리자라고 할 때, 민족국가가 앞으로 해체될 것인가 아닌가, 유럽국가는 어떠한 상을 가지게 될 것인가하는 질문 역시 계급관계가 전 유럽적 차원에서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져 있다.
<미주>
*. 이글은 졸고 [지구화와 독일의 사회국가](미발표초고)에 서술된 내용을 기초로 관련 부분을 발제를 위해 재구성한 것이다.
1) 경제학의 유파로서 신자유주의는 역사적으로 볼 때, 1920년대 말의 세계 대공황과 이에 이어진 파시즘적인 계획경제에 대한 반발로서 생겨났다. 신자유주의에 따르면, 시장과 경쟁의 원칙을 도입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의 자기조정력이 회복될 수 있으며,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은 시장에서의 경쟁메카니즘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외부적 조건을 확보하는 데에만 한정시켜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구성원의 인간적인 삶이 시장메카니즘만으로는 보장되지 못함으로, 국가가 시민의 복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스스로를 자유방임주의에 기초한 고전적 자유주의자들과는 구분한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적 신조에 기초하고 있어서, 개인의 자유에 기초한 시장경제에서 사회의 기본 원칙을 찾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개인의 자유와 경쟁을 바탕으로 개인의 창의력을 최재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시장을 중심으로한 경제정책적 영역과, 시장경제적인 업적을 기초로 사회구성원의 복지를 보장하기 위한 사회정책적 영역이 결합된 것이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것이다. 이때 사회정책은 시장경제의 경쟁력이 향상되도록 조정되어야 하며, 경쟁력의 확보는 거꾸로 사회정책을 실시하기 위한 물질적 토대가 된다. 그러나 기회의 평등, 사회적 안정 그리고 사회적 필요충족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의 사회정책적인 개입주의는 항상 폐혜를 수반하므로, 사회정책은 항상 자율적인 시장경제의 부수물로서 이차적인 지위에 머물러야한다고 주장된다. 즉, 개인의 원칙(Individualprinzip)은 사회의 원칙(Sozialprinzip)에 우선하며, 보조의 원칙(Subsidiaritatsprinzip)은 연대의 원칙(Solidaritatsprinzip)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출처 : 사민사랑
글쓴이 : 이상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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