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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산행 3.뽀종이 생각은 2009. 1. 13. 01:14
그때가 아마 대학 3학년 늦가을이었나 보다.
주말에 날을 잡아 서클 친구 십여명들과 1박2일 밀양 천황산 산행을 했던 적이 있었다.
등산로 초입에 있는 표충사를 천천히 돌아보고 산행을 시작했는데, 그만 중간에서 길을 잃어버렸다. 억새꽃 덤불을 헤치며 산길을 헤매다 보니 어느새 짧은 해는 서녘으로 기울어, 금방 가을산에 어둠이 밀려드는데 동행한 여학생들은 숫제 울상이고, 가도가도 길은 나타나지 않아 얼마나 당혹스러웠던가. 길라잡이를 맡았던 우리 동기들의 그 절박함이란......
희미한 렌턴 불빛에 의존해 아마도 두 세 시간은 족히 걸었을성 싶다. 이윽고 산판도로인 듯, 산허리로 난 한가닥 길을 발견하고도 또 얼마나 걸었을까.
길을 가로 지르며 조그만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고, 그 옆에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이 한 채 눈에 들어왔다. 귀신이 나올 것 같다며 방정을 떠는 여학생들을 간신히 달래 우리는 거기에 텐트를 치고 숙영을 하기로 했다. 춥고 배는 고프고, 온몸이 나무에 긁히고 바위에 부딪혀 생채기 투성이였다.
서둘러 나뭇가지를 줏어모아 불을 피웠다. 버너를 피워 코펠에 밥을 하고 꽁치 캔으로 찌개를 끓여 허겁지겁 허기진 배를 채웠다. 달디 달았다. 그처럼 밥이 꿀맛이었던 적이 또 있었을까.
시급한 민생고를 해결하고, 다들 모닥불 가에 둘러앉았다. 어느새 높은 가을하늘엔 반달이 떠올랐고, 시린 하늘에 초롱한 별빛들이 한무더기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 날밤 소주잔을 돌려마시며 누구는 문학을 얘기했고, 누구는 예술을 얘기했으며, 누구는 또 이 썩어빠진 독재정권을 타도해야 한다고 시대의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취기로 몸은 달고, 불빛 너울에 발그레하게 일렁이는 얼굴, 얼굴들이 사무치도록 아름다웠다. 기타를 치며 목이 쉬도록 민중가요를 불렀고, 이야기에 이야기가 끝도 없이 꼬리를 물던 그 날 밤. 우리는 동녘 하늘에 희붐하게 새벽이 오도록 모닥불가를 떠나지 못했다.
그 때 동행했던, 유난히 잊혀지지 않는 친구가 있다.
역사학과을 전공했던 한 친구, 소년처럼 여리고 맑은 심성을 가졌던 그 친구, 이 날처럼 캠핑을 갈 때나 행사 때면 말 없이 궂은 일들을 도맡아 하던 그 친구. 언젠가 마음에 두고 있었던 후배 여학생에게 어렵사리 애정 고백을 했다가 퇴짜를 당하고, 그 사랑의 아픔을 이기지 못해 끝내 큰 상처로 지금도 혼자인 그 친구 그 모습이 눈물 나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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