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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 늙은 파트너 `워낭소리`를 보고/ 류낙원좁은길 산책할때 2009. 2. 4. 20:41
"내 멍에는 쉽고 짐은 가벼우니"-워낭소리를 보고 / 류낙원
영화 <워낭소리>를 봤습니다. 팔순의 농부와 늙은 아내 그리고 15년 남짓의 평균 수명을 훌쩍 넘어 노인과 30년을 함께 해온 마흔 살 먹은 일소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물입니다. 소도 노인도 모두 고달픈 한평생이라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은 심란했지만 그러나 인생과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영화 전편을 수놓은 눈이 시리도록 맑고 아름다운 배경은 봉화군 상운면 하눌리입니다. 읍내의 제 고향집과 10여리 떨어진 동리이니 제게는 너무도 익숙한 풍경입니다. 잠시 등장하는 그 집 장남의 근무지에 아버지께서 재단 이사로 있으니 저와도 이런저런 연고는 있는 셈입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게 소는 농사일의 절반 이상을 감당해 주는 일꾼이요 또한 훌륭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부지런히 쟁기질을 하고 땅의 소산뿐아니라 노인과 할머니까지도 달구지로 실어 나릅니다. 노인 또한 혹여 소에게 해가 될까 제초제도 쓰지 않고 농사를 지으며 수시로 싱싱한 꼴을 베어 주고 새벽마다 쇠죽을 쑤어 줍니다. 다만 노인과 늙은 소를 뒤치다꺼리 하랴 할머니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소를 정리하면 남들처럼 기계와 농약으로 쉬이 농사 지을 수 있을 것이라며 할머니는 무시로 성화를 부리지만 노인의 고집은 완강합니다. 동네 사람들은 소도 주인도 서로 잘 만났다며 우스개 소리를 건네고, 노인은 소가 먼저 죽으면 자신이 상주질 할 것이라고 맞장구를 칩니다. 영화의 영어 제목처럼 소는 노인의 오랜 지기(old partner)인 것입니다.
어느덧 자신을 돌보는 것마저 버거우리만큼 병약해진 노인은 아내의 등쌀에 못 이겨 급기야 소를 끌고 우시장으로 나갑니다. 백만 원이면 충분한 값어치라는 상인들의 제안에 5백만 원 이하로는 절대 팔 수 없다는 노인의 옹고집은 그들의 비웃음을 사게 되지만 평생을 함께 해온 소를 내칠 수 없는 노인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농사현장에 다시 돌아온 소도 노인도 쇠잔한 기력으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노부부 겨울 날만큼의 땔감만 마당 한 가득 해 두고는 소는 더 이상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합니다. 늘 구박만 하던 할머니의 안타까워하는 부르짓음에도, “일어서! 일어서!”라고 외치는 노인의 애틋한 다그침에도 불구하고 소는 그렇게 숨을 거두고 맙니다.
인상 깊었던 두어 장면이 있습니다. 간지러운 콧등을 거친 나뭇가지에 문지르던 소에게 노인은 어느새 다가와 무심한 표정으로 가려운 곳을 긁어줍니다. 가는귀먹어 할머니의 잔소리에는 언제나 묵묵부답이더니 소의 울음소리에는 즉각 반응을 보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 다음날, 더 이상 우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병들고 늙은 소를 바라보던 노인은 한순간 코와 등에 걸쳐진 코뚜레와 멍에를 풀어주더군요.
<워낭소리>를 보면서 지독스레 일에 혹사당하는 소와 노인의 그 지난한 일생이 내내 불편했지만 그것이 우리 부모님 세대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짐을 대신 져주시는 주께서 나의 구주가 되심입니다. 기억나세요? 이태 전 우리가 부른 곡 중에 마태복음 11장 말씀을 가사로 최종길 목사님이 작곡한 <다 내게로 오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7~28)” 맞습니다. 주님은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감당해 주시는 분입니다. 소는 죽어서야 그 멍에를 벗을 수 있었지만 우리에겐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해 주시는 주 여호와 하나님이 계십니다. 주는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어 주십니다(시 17:8).
참 충성된 소였습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노인은 그런 소를 내다팔 수 없었고 분에 넘치는 봉분도 세워주었습니다. 소는 노부부의 추억 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입니다.
유한한 우리 인생, 주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사명 잘 감당하다가 그 언젠가 주의 보좌 앞에 섰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는 주님의 따뜻한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백양로교회 시온찬양대소식지 <시온의 찬미> 중 지휘자 칼럼(09.02)
*영화 <워낭소리>는 제13회 부산국제영화제 피프 메세나상(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하였고, 2009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되었습니다. 현재 상영작이지만 얼마간의 스포일러(내용 공개)가 포함되었습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출처 : 아굴라와 브리스가글쓴이 : 아굴라 원글보기메모 :' 좁은길 산책할때'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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