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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의 경고 (미가 2장 1-5절)민주를 꿈꾸며 2009. 2. 4. 21:08
2.1 침상에서 악을 꾀하며 간사를 경영하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 진저
Wehe, die Unrecht planen und B?se tun auf ihren Lagern: denn es steht in ihrer H?nde Macht.
2.2.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취하니 그들이 사람과 그 집 사람과 그 산업을 학대하도다
Sie begehren Felder und reißen sie an sich, H?user, und nehmen sie. Sie unterdr?cken den Mann und sein Haus, den Menschen und seinen Erbbesitz.
2.3.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 내리기를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히 다니지 못할 것이요 이는 재앙의 때 임이니라 하셨느니라
Deshalb hat so JHWH gesprochen: Siehe, ich plane ?ber diese Geschlecht Unheil, aus dem ihr eure H?lse nicht ziehen k?nnt, und nicht werdet ihr aufrecht gehen, denn eine b?se Zeit ist dies.
2.4. 그 때에 너희에게 대하여 풍사를 지으며 슬픈 애가를 불러 이르기를 우리가 온전히 망하게 되었도다 그가 내 백성의 산업을 옮겨 내게서 떠나게 하시며 우리 밭을 나누어 패역자에게 주시는도다 하리니
An jenem Tag erhebt man ?ber euch einen Spruch und stimmtdie in Erf?llung gegangene Wehklage an; man sagt: ?V?llig verw?stet sind wir!“ Den Bodenanteil meines Volkes vertauscht man! Wie entzieht man ihn mir!
2.5. 그러므로 여호와의 회중에서 제비를 뽑고 줄을 띨 자가 너희 중에 하나도 없으리라
Deshalb wirst due keinen haben, der den Strick wirft im Losverfahren in der Gemeinde JHWHs
위의 본문을 통하여 미가가 전하는 하나님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언급하였다.
이제는 다른 입장에서 다시 한 번 더 말할 필요가 생겼다.
며칠 전 한 방송에 나오는 100분 토론을 통하여
용산재개발 희생자들에 대한 대책과 문제점을 듣고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오늘날 사회는 신자본주의시대로 가진자와 가지지 못한자의 그 벽이 너무 높게 나타나고 있다.
흔히 말하는 고대 중세에서 진행되었던 신분적 대물림이
이제는 변모하여 가난이라는 삶의 대물림이 이어질 모양이다.
가진 자들은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하여
가지지 못한 자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하여 처절하리 만큼 저항한다.
무엇이 이토록 이들을 이렇게 갈라놓았으며
무엇이 이토록 이런 구조적 문제를 야기시켰는가?
그것은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탐욕과 음모가 아닐까?
겉으로는 장미빛 청사진을 보여주면서도
내면으로는 가진 자들의 더 큰 탐욕과 욕망을 위하여
제대로 가지지 못한 자들의 것들까지 탐하려는 것은 아닌가?
미가는 오늘 본문 2장에서 다시금 외치고 있다.
침상에서 악을 꾀하고 간사를 경영해 놓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한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이들은 누구인가? 오늘날 누구인가?
그들의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취하니 그들이 사람과 그 집 사람과 그 산업을 학대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정녕 아무도 없단 말인가?
방송에서 한 패널이 이런 말을 하였다.
재개발로 인하여 얻어지는 수익의 1%만 내몰려 나가는 자들에게 주어져도
이번 철거당한 모든 철거민들을 다 살리고도 남았다는 점이다.
내몰리는 철거민들은 가진 자들의 1%가 없어서
죽음으로 내몰려야 했고, 법질서를 어기면서까지 투쟁했어야 했다.
그들의 생존을 위하여 말이다.
한쪽에서는 법질서 확립이라는 명목으로 강하게 제지를 해야만 하는 입장이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생존의 문제를 놓고 그 누구도 기득권에 올바르게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이해해 주기는 커녕 자신들의 재산마저 법테두리안에서의 보상이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동등한 보상은 커녕 터무니 없는 보상만으로 그들은 살아갈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니 자신의 삶이 궁지에 몰릴 때 누구든지 저항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옳은 것이든 아니든 간에....
오늘의 사회는 점점 이원화되어가고 있다.
나눔과 베품이 없는 사회로 보여진다.
일하는 자들은 죽으라고 일해도 제대로 살아가기는 커녕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있듯이
먹고사는 노예가 되어 하루 하루 끼니를 때워야 하는 파리목숨과도 같은 자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법은 누구를 위하여 있는가?
법은 두 종류를 위하여 있는 것이다.
하나는 사회적 규범 즉 법을 위반하는 자들에게 일정한 강제력을 통하여 규제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법이 있는 것이다.
법을 집행하기 위한 강제력(물리적) 동원은
이는 대다수 국민으로부터 사회적 질서와 보호를 위하여 위임받은 정당한 물리력 행위이다.
하지만, 법, 법을 말하는 자들은 과연 법을 준행하고 있는가?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라고 떠들어 대는 자들은 과연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있는가?
진실되게 준엄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고 있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약자를 위하여 법이 존재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약자의 소외당함에 대한 귀기울임은 오데간데 없고
기득권의 힘에 물리력이 법집행이라는 명목아래 정당한 방법이라 집행되어져야만 하는
이율배반적인 행위는 무엇인가?
왜 정정 당당하게 있는 그대로 알리지 못하는가?
이사회가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는 난 전혀 모르겠다.
미가라는 성서기자는 단호하게 이런 부분에 있어서 강하게 하나님의 경고를 언급하고 있다.
미가서 전체를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특별히 미가서 3장 1-11절을 눈여겨 볼 대목이다.
1 내가 또 이르노니 야곱의 두령들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들아 청컨대 들으라 공의는 너희의 알
것이 아니냐 2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3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남비와 솥 가운데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4그 때에 그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을지라도 응답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행위의 악하던 대로 그들 앞에 얼굴을 가리우시리라 5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 이런 선지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6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흑암을 만나리니 점 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이라 7선견자가 부끄러워하며 술객이 수치를 당하여 다 입술을 가리울 것은 하나님이 응답지 아니하심이어니와 8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9야곱 족속의 두령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 곧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청컨대 이 말을 들을지어다 10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11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공의나 정의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위하여 가진 위임받은 권력과 힘을 사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권력과 힘을 가진자들의 보호와 세력을 위하여 사용하고 있음에 대하여 하나님은 강하게 경고하고 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는 곧 사회의 정의와 공의로 연결이 된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는 사람들이 정당한 대우와 인정을 받게 만드는 데 있다. 하나님 앞에서 높고 낮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선의 행위를 하지는 않고 악(불의 즉 탐욕, 욕망 기득권 확장등)을 좋아하여 백성들에게 겨우 남은 가죽과 뼈와 살까지 뜯어 취하려 하려는 자들의 행동을 보시고 하나님은 분노와 하나님을 향한 적대행위로서 그 분노를 참을 수 없음을 경고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특별히 백성들에게 평강을 외치면서도 그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 말의 뜻은 겉으로는 평강(즉 유토피아, 더나은 세상, 밝은 세상을 외치며 힘든 것을 함께 잘 극복하자 하면서도)을 외치면서도 그 입에(탐욕과 저주와 욕망에 굶주려 있는 마음) 무언가 쑤셔넣어주지 않으면 그들은 전쟁을 일으키는 도다(즉, 분쟁과 억지로 권력(무력)을 휘둘러서라도 그것을 쟁취하려는 태도가 아닐까?)
그러면서도 그들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고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도 오히려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어리석은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불의한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강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행하는 만큼 그대로 하나님은 보복하시겠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이미 미가서 1장, 2장에서 언급이 되고 있었다. 화있을진저...라는 단 한마디 속에 말이다.
특별히 미가서 2장 3절에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족속에게 재앙 내리기를 계획하나니 너희의 목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요 또한 교만히 다니지 못할 것이요 이는 재앙의 때 임이니라 하셨느니라 라고 말이다.
이는 분명 그들이 계획하고 준비한 만큼 하나님의 무서운 보복의 재앙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훨씬 크고 깊고 무겁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신학자로서
공의를 굽게 하고 정의를 왜곡시키는 세상의 현실을
강하게 경고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을 외면하거나 도외시 할 수 없다.
필자는 현재 양분화 되어 있는 그 누구의 편도 아니다.
필자는 다만 하나님의 편이고 싶을 따름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준하여 그 말씀에 근거하여 말씀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가진 자들이 조금씩만 더 나누고 양보한다면
이런 불행은 없었을 것이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세우는 척도가 아닌가?
삶의 생존을 위하여 가진 자들의 단 1%만을 내어 놓았다면
그들은 과연 그렇게 높은 곳에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법을 어겨가면서 처절하게 저항해야만 했을까?
거리로 내몰릴때 그 심정을 누가 이해 줄 수 있을까? 아무도 모른다.
그것을 경험해 보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그것이 옳다 맞다 정당하다 부당하다고 말할 자격조차 없다.
필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이유야 어찌 됐던 고인들의 죽음으로 내몬 안타까운 현실을 우리는 그저 방관만 할 수 없다.
이제는 정말 누구나 말하고 있는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가 정녕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점을
생각만 하지 말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수정하고 돌이켜야만 다시는 이런 반복이 없을 것이다.
각자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이든 어디서부터이든 이제는 상관이 없다.
사람이 서로 공존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그리고 우리 크리스천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펼쳐지기 위하여
함께 만들어 가야하는 세상이 되어야만 한다.
출처 : 문화(文化)가 신학(神學)을 만나면...글쓴이 : 문화와 신학 원글보기메모 :'민주를 꿈꾸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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