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은 힘이 세다
짜장면만큼 구설에 자주 오르는 음식도 흔치 않다.
지금이야 짜장면이라고 해도 혼나지 않지만, 10년 전까지도 짜장면 대신에 자장면이라는 졸리고 감질나는 단어를 써야만 했다.
당시에 시인 안도현이 단단히 화가 나서 짜장면을 자장면으로 결코 쓰지 않겠노라고 '선언' 했던 기억이 난다.
짬뽕은 운이 좋은 편이다.
똑같은 '짜' 자 출신인데 짜장면만 시범 케이스에 걸려 혼이 났다. 아마도 짜장면이 이 바닥의 대표주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집에서의 고전적 딜레마, 즉 짜장이나 짬뽕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하다.
그 고민을 덜기 위해 누군가 기특하게 짬짜면이란 걸 식탁에 올려 놓았지만 적어도 내게 그것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이채가 면 위에 반듯하게 놓여 있고 가운데에 메추리알 하나가 앙증맞게 박혀있는, 온전한 한 그릇의 짜장이다.
무엇보다 짬짜면은 짜장면과 달리 '가오'가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나는 짜장과 짬뽕사이, 선택의 딜레마를 겪은 적은 별로 없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은 느끼한 중국음식이 땡기는데 뭘 먹지?' 하면서 중국집 문을 들어서는 반면, 나의 허기는 매우 구체적이어서 '오늘 짜장이 급땡기네' 중얼거리며 중국집을 찾는 식이다.
나의 고민은 그것보다는 '보통'과 '곱배기' 사이에 있다.
그 고민은 사소해보이지만 반복적이어서 자주 성가시다.
보통과 곱배기의 '정량'과 무게는 잘 모르지만 '보통'은 다 먹은 담에 뭔가 조금 아쉽고, 곱배기는 좀 많아 부담스럽다.
주로 혼밥을 하는 내게 있어 이 선택은 녹녹치 않다.
그렇다고 단골도 아닌 주제에 별도의 가격으로 내게 양을 맞춘 짜장면을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얼마전 짜장면이 포탈에 떳길래 또 뭔일인가 싶었더니 시집의 가격인상과 관련된 내용이다.
시집 한권 가격이 2천원이나 올라 결국 짜장면 두그릇 값과 같아 졌다는 기사다.
늘 이런 식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짜장면은 자주 세간의 주목을 받지만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짬뽕은 언제나 그렇듯 중요할 때 자리를 비우거나 쓸쩍 묻어간다.
여하튼,
또 하나 선택의 딜레마가 생겼다.
물론 짜장면도 먹고 좋아하는 시집도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매월 소소한 '정량'의 용돈으로 버티고 있는 내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짜장면을 먹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그 대체할 수 없는 존재감에 있지 않나 싶다.
짜장면이 먹고 싶은데 대신에 김치찌개나 햄버거를 떠올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짜장면은 오래전 우리가 무언가를 기억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우리 곁에 있어 왔다.
그래서 그런지 그에겐 평생 궂은일 마다않고 묵묵히 선산을 지킨 장자의 아우라가 느껴진다.
짜장면은 가수 지오디노래는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지' 로 남아 있는 슬픈 기억이고, 문순태시인은 '한번도 짜장면을 사주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유년의 상처, 그 현존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짜장면은 은근히 힘이 세다.
19.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