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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시바신은 왜 결혼을 하였는가- 시바뿌라나에서의 시바신 연구 -
    인문학의 즐거움은 2009. 1. 23. 08:46
    시바신은 왜 결혼을 하였는가
    - 시바뿌라나에서의 시바신 연구 -

    서 종 순*외대 철학


    1. 시바신화의 관심


    시바(Śiva) 신화에 관심을 갖는 자는
    과거에 덕을 쌓은 복이 많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네.
    시바신화를 들으면 죄를 제거하게 되네.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다 경험한 뒤에 시바신의 나라에 도달한다네.
    성자들이 가장 고귀한 경전인 시바신화를 들으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네.
    그들은 시바신의 형태인 루드라(Rudra)로 나타나는 것으로 여기게 되네.
    시바신을 명상하는데 항상 몰두해 있고,
    혀는 시바신의 자질을 칭송하며,
    귀로 시바신화를 듣는 사람들은 세상의 고난의 바다를 건넌다네.

    시바신화는 이야기 그 자체로도 동화처럼 재미있다. 상징의 의미를 이해하면 멋진 철학이 되고 그 신화에 대해 믿음을 가지면 좋은 종교가 된다. 특히 신화 중에서도 결혼신화에 관한 부분은 사랑과 미움, 축복과 저주가 섞인 드라마틱한 이야기이다. 이는 ‘갈등과 해법’ ‘분열과 통일’ ‘고통과 해탈’ ‘타락과 구원’의 길을 보여주는 가장 매혹적인 부분으로 인간의 심리에 ‘패러다이스 효과’를 일으킨다. 그 표현에 있어서도 가장 에로틱하면서도 교훈적이어서 우리에게 세속과 초속 차원의 만족을 줄 수 있다. 관습과 도덕에 얽매이지 않는 대담한 표현은 의식과 무의식의 심층부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심화시킨다.
    시바신화는 인도인의 꿈이 담긴 경전이다. 시바신의 결혼신화는 인도인의 최고선을 지향하는 길의 하나다. 이 신화에서 ‘성 관계란 상당히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 기능 중에서 가장 우선적이고 훌륭한 기능은 바로 우주적 기능이다. 또 성적인 용어로 심리상태를 바꾸어 말해도 전혀 상스럽지 않는 특이함이 있다.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성행위는 신비로운 의식으로 그리고 필수적인 활동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엘리아데)
    시바신화는 옛적 신화이지만 이야기 형식의 철학・종교로서 오늘날 우리에게 자신의 영혼을 찾는 자극제가 되며 그 영혼 안에서 삶을 바라보며 자연스런 죽음을 맞게 한다. 우리 삶의 가장 깊은 열정은 존재의 근거와 결합하는 것이며 최종적으로 생의 위대한 본질을 찾아 나서는 변증법적 원정이다. 이는 여성과 남성의 의식을 구별하면서도 성별을 초월한 인생의 신비와 자연 그리고 영혼을 재발견하려는 원정인 것이다.


    2. 시바신화의 시원성

    수메르 사원의 예술과 관념체계는 기원전 2800년경에 이집트로, 기원전 2600년경에는 크레타와 인더스로 흘러들었다. 문화가 성숙 단계에 있는 곳에서는 문명의 체계가 새로 유입될 때 그것들은 관성적으로가 아니라 창조적으로 수용한다. 취사선택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문화가 토착적인 전통 내부와 접맥된다. 이는 문명이 새로운 단계(stage)에 진입한 것으로 본다. 이집트와 크레타문명 그리고 인더스 계곡의 문명을 이의 예로 볼 수 있다.인도 고대 문명은 모헤조다로(Mohanjo-jaro)와 하랍파(Harappa)의 문명으로 기원전 2500년경에 나타난 청동기 문화이다. 이 유물에는 여신에 관한 인장이 두 개나 있고 또 시바신의 전형이라고 불리는 동물의 주의 인장이 있다. 이 인장에는 요가의 자세 여섯 가지가 새겨져 있다.
    첫 번째 인장에는 세 개의 얼굴을 가진 인물이 요가를 취하고 있고 두 마리의 가젤 영양과 호랑이 코끼리, 무소, 물소가 등장하고 삼지창 모양의 왕관을 쓰고 남근을 노출하고 있는 이는 요가의 신, 나체의 신, 삼지창의 시바신, 동물의 주로서 시바신과 유사성을 지닌다. 또 다른 요가의 모습이 있는 인장에서는 중앙에 요가를 하고 있는 자를 향해 한 쌍의 뱀이 수호하고 그들 앞에서 숭배자들이 경배를 하고 있다. 이는 뱀의 목걸이를 걸고 있는 숭배 받는 시바신과 유사하다.
    베다 시대에서 시바신은 루드라로 알려지고 루드라는 리그베다(Ṛg Veda)에서 검은 배, 붉은 색의 등을 가진 갈색 피부의 신, 폭풍우의 신으로 무섭고 파괴적인 신이다. 또한 다른 리그베다 찬가에는 루드라는 치료의 신, 약초의 신, 가축의 신으로 묘사되며 사람들은 루드라신에게 공동체를 보호하고 자손을 번성케 하며 말과 가축을 지켜 달라고 기도한다. 루드라신은 질병 너머의 저편, 천둥, 축복 받은 죽음, 황소와 암소, 사납고 부드러운 그러나 생명감 넘치는 젊음의 루드라신으로 알려진다. 야주르베다(Yajur Veda)에서는 파괴적이면서도 자비로운 양면의 성격을 지닌 루드라에게 올리는 찬가가 나타난다. 그는 공동체와 떨어져 사는 황야의 신으로도 언급된다. 이는 루드라신이 중심적인 위치에 있지 못하는 주변의 신임을 나타낸다.
    스웨스따스와따라 우빠니샤드(Śvetāśvatara Upaniṣad)에서 시바신과 동일시되는 루드라신은 브라흐만(Brahman) 절대자로까지 그 위치가 상승한다. 다음의 스웨스따스와따라 우빠니샤드에는 이런 폭넓은 루드라-시바(Rudra-Śiva)신관을 나타내고 있다.

    루드라신은 유일한 신이시여,
    그 분 외에는 아무도 없나니,
    그 분은 모든 존재를 창조하고 보호하고
    그리고 시대의 끝에는 모두 함께 사라지게 하나니.

    사방에 눈이 있고,
    사방에 얼굴이 있고,
    사방에 팔이 있고,
    사방에 발이 있는
    유일한 신이,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당신의 팔과 당신의 날개로
    하늘과 땅을 운행시키시니.

    기원적 2세기경 빠딴잘리(Patañjali)의 ‘빠니니(Paṇini) 산스끄리뜨 문법에 대한 대해설서’에도 ‘Śiva - bhāgavat’(시바신 숭배자)가 언급되고 있으며 인도를 다스렸던 그리이스 샥따(Śāka), 빠르티야(Parthia)왕 시대에 사용하던 동전에도 시바신의 상징물이 있고, 마하바라따(Mahābhārata)에도 초기 시바신 수행자들을 언급하고 아르준(Arjuna)과 끄리슈나(Kriṣṉa)가 시바신의 열렬한 숭배자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시바신의 이미지 형성과 종교화는 오랜 역사적 흐름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3. 시바뿌라나(Śiva Purāṇas)에서의 시바신

    1)시바 뿌라나(Śiva Purāṇa )
    뿌라나(Purāṇa)는 ‘오래된’, ‘옛 것의’라는 뜻으로 ‘인도 문학의 고전의 한 장르로서 ‘고대 종교, 철학, 역사, 사회, 정치 등 고대 사회의 모든 분야를 총망라하는 백과사전’이다. 이는 수십 만의 산쓰끄리뜨의 싯구로 구성되었으며 ‘인도의 태양 아래 모든 것을 다루는’, ‘여기에 있지 않은 것은 어디에서도 찾지 못한다’는 저자의 야심에 찬 작품이다. 뿌라나는 우주의 창조와 파괴, 인도의 조상, 마누의 탄생, 마누의 자손들의 통치와 신, 왕의 계보, 성자의 일대기를 다루며 드라비다의 토착 문명이 외부 민족 아리안 족의 베다 문학과 재 융합된 신화 경전이다.
    몸과 마음 그리고 도덕의 완성에 도달한 사람만이 사는 사띠야시대(Satya Yuga)에서 점점 쇠퇴하여 타락한 영혼들이 가장 많은 깔리시대(Kali Yuga)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게으르고 비행이 많으므로 쉬운 방법- ‘해탈을 성취할 수 있는 덕성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오직 뿌라나를 듣는 방법’-의 영적인 생활이 제시되었다. 이를 위해서 네 베다(Ṛg, Yajur, Sāma, Atharva)를 깔리시대의 사람들에게 맞게 경전을 편찬한 성자 비야사(Vyȁsa)의 작품이 뿌라나(Purȁṇa)이다. 이 뿌라나는 역사적인 서술로 베다의 가르침을 이야기 형태로 지었으므로 이해하기 쉬운 작품이다.
    뿌라나는 베다의 만신전에서 인도의 삼신을 다룬 경전으로 비슈누(Viṣṇu)중심의 뿌라나, 브라흐마(Brahmā)중심의 뿌라나, 시바신 중심의 뿌라나로 나누어진다. 각각 사뜨와(Sattva), 라자스(Rajas), 따마스(Tamas)의 성질에 따라 선의 보호, 욕정의 극복, 무지의 파괴를 세 신들을 중심으로 저술한 이야기 경전이다. 이는 다양한 기질의 사람들이 저에게 맞은 방법으로 모두 인격의 완성에 이르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시바 뿌라나는 이 중에서 시바신에 대한 뿌라나이다. 이는 특히, 시바신의 영광과 위대함을 찬양하고 시바 종교의식과 철학적 원리를 설명하며 시바신화에 근거한 우주론, 가르침과 시바신의 특성, 화신, 신성들이 설명된다. 시바뿌라나는 시바신화의 전설과 의식에 대한 성스런 논문이다.
    시바 뿌라나에는 Vidyeśvara, Rudra, Śatarudra, Kotirudra, Umā, Kailāsa, Vāyaviya등이 포함되고 루드라 삼히따(Rudra saṁhitā)는 창조, 사띠(Sati)의 설명, 꾸마라(Kumara)의 모험, 시바의 전투 등이 포함된 것으로 이 논문의 논의는 루드라 삼히따와 빠르와띠(Pārvatī)의 일생에 관한 루드레쉬와라 삼히따(Rudreśvara saṁhitā)에 관해 언급될 것이다.
    다음은 시바 뿌라나에서의 시바신의 이미지를 정리해본다.

    2)시바 뿌라나에서의 시바신
    시바신은 죽음을 정복하는 신, 요가의 신(Yogeśvara), 음악, 춤의 신, 어둠의 악마를 정복하는 신으로 인생의 모든 대립과 갈등을 초월하며 끝없는 신성의 무한한 영역으로 향하는 신이다. 그러므로 시바신은 수 천년동안, 인더스 문명으로부터 인도의 위대한 신(Mahādeva)으로서 섬겨져 왔다.
    시바, Śiva의 어근은 두 가지, śi(to lie)와 śvi(to cut asunder)이다. 첫 번째 어근 śi로부터 시바신은 모든 존재를 품고 있는 자 (One in whom all things lie-모든 주체와 객체)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두 번째 어근에서 시바신은 모든 죄를 잘라내는 자(śyati papam iti śivah, one who cuts asunder all sins)란 의미가 된다. 이는 시바신이 모든 실재의 근거이고 은혜로 모든 생명체를 구하는 최고의 자비임을 나타낸다. 형이상학과 가치론의 관점에서 모두 최고의 신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시바신은 은혜로운 자(the benign one), 행복한 자를 의미한다. 시바신이 인격신으로 숭배될 때 이 신은 흰색 피부의 젊은이 모습이다. 사지에 재를 바르고 세 눈을 갖고 있다. 제 삼의 눈은 양 이마 사이에 있다. 손은 넷이고 이 중 두 손은 삼지창(Triśūla), 북(ḍamarū) 다른 두 손은 보호의 무드라(Abhaya mudrā), 축복의 무드라 (Varada mudrā)이다. 그의 머리 타래에는 갠지스 강물이 흐르고 초승달을 장식품으로 머리에 쓴다. 호랑이 가죽, 코끼리 가죽으로 하의를 입으며 온 몸에 뱀을 휘감고 있다. 그의 푸른 목에는 해골이 걸려 있다.

    그는 다섯 얼굴과 세 눈을 갖고 있고 앞이마에 초승달이 있다. 머리는 틀어 올리고 흰 피부와 큰 눈이 있다. 그의 몸은 재로 덮었고 열 개의 팔이 있네. 목은 푸른색이네. 그는 모든 장신구를 달고 있네. 그의 팔다리까지 모두 멋지네. 재로 세 줄을 그의 앞이마에 그렸네.

    시바신의 여러 이름을 통해서도 우리는 시바신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다.

    Maheśvara: 위대한 신
    Chandrashekara: 머리에 초승달을 지닌 자
    Bhūteśvara: 동물, 도깨비의 주
    Mṛityuṁjaya:죽음을 정복한 자
    Śri Kaṇṭa: 목이 아름다운 자
    Smara Hara:사랑의 신(Smara or Kamadeva)을 파괴한 자
    Gaṅgādhara: 머리에 갠지스강을 가진 자
    Sthāṇu: 영원한 자
    Giriśa: 산의 신

    삶의 모든 대립과 갈등을 포괄하면서 넘어서는 초월의 신, 시바신의 모습을 ①죽음, 파괴의 신 ②루드라-시바-아그니(Rudra- Śiva -Agni)의 신 ③세 눈의 신 ④다섯 얼굴의 신으로 살펴본다.

    ① 파괴의 신
    시바신은 파괴 신으로 생성된 우주를 해체하고 파멸하며 다시 창조 이전의 상태로 환원한다. 있었던 모든 것은 없어지게 되고 태어난 것은 모두 죽게 마련이다. 모든 요소를 통합해서 생명이 생겨나고 이런 요소들이 서로 분리되면 죽음이 온다. 바로 이런 파괴의 죽음의 신이 시바신이다. 우주를 해체함은 다시 끝임 없이 무한자의 空의 세계로 돌려놓는 것이다. 무한한 空은 모든 존재를 생성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동시에 시바신은 파괴를 통한 창조를 준비하는 신으로 파괴와 창조를 동시에 책임지는 신이다.

    ② 루드라-시바-아그니
    베다의 판테온에는 루드라신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이는 시바신과 동일한 신이며 동시에 이 두 신은 생명의 원리가 아그니라고 말한다. 루드라신은 주로 무섭고 두려운 신으로 시바신은 자비로운 신으로 본다. 이 두 신은 은혜로운 신으로 동일한 절대자의 두 면을 일컫는 두 이름일 뿐이다. 루드라는 두렵고 무서우며 파괴적인 면이고 시바신은 길조의 삶을 유지하는 신이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생명의 원리 아그니(Agni)의 배고픔의 만족도에 따라 달라진다. 아그니신은 적당한 공물, 음식물을 얻지 못하면 무시무시한 파괴력의 신 루드라가 되지만 적당한 음식을 얻으면 언제나 자비롭고 선한 시바신이 된다. 아그니신의 갈증과 기갈을 면하는 길은 우리들의 진지한 헌신이다. 이 헌신이 제사의 음식을 준비하고 이 음식의 봉헌으로 우리의 내면의 새로운 영혼의 탄생, 새아기(Nava Kumar,a new boy)를 얻게 된다. 이 아그니는 우리의 ‘희생의 주’로서 이 신이 먼저 존재할 때 다른 모든 신들도 현존하게 된다.

    ③ 세 눈의 신(Tryambaka deva)
    시바신은 세 눈을 가진 자, 뜨라얌바까 데와(Tryambaka deva)라고도 불린다. 시바신의 눈은 각성시키는 힘(the power of awakening)이며 세 눈은 해, 달, 불로서 각각 해는 열의 원리, 달은 차가움의 원리, 불은 이 둘의 합성으로 세 가지의 에너지의 신진대사를 말한다. 이는 육체적인 차원, 심리적인 차원, 영적인 차원에 대응된다. 요가(Yoga)의 언어로서 해는 삥갈라(Piṅgalā), 달은 이다(Iḍā), 불은 수슘나(Suṣumnā)이다. 이는 곧 세 도시- 금의 도시, 은의 도시, 구리의 도시와도 대응된다. 이 도시는 분리되면 파괴적이며 이 셋은 한번에 꿰뚫으며 다같이 그들의 기능을 통합한 것이 시바신의 화살이다.

    ④다섯 얼굴의 시바신(Pañcānana)
    시바신의 다섯 얼굴은 다섯 신 이샤나(Iśāna), 따뜨뿌르샤(Tatpuruṣa), 아고라(Aghora), 와마데와(Vāmadeva) 그리고 사띠오자띠(Satyojāta)이다. 이 다섯 신은 각각 에테르, 공기, 불, 물, 흙의 오 원소를 나타내고 방향으로는 위쪽, 동쪽, 남쪽, 북쪽, 서쪽을 나타낸다. 이샤나는 해탈을 주는 신이고, 따뜨뿌르샤는 어둠의 힘, 무지의 힘이다. 아고라는 우주를 흡수하고 새로 생성시키는 힘을 나타낸다. 와마데와신은 보호, 유지하는 힘을 나타내며 사띠오자띠는 창조력을 나타낸다. 이 다섯 얼굴은 우주 생성의 가장 기본적인 힘이다.

    시바신은 인격신의 모습과 남근형의 원통형 모습으로 숭배된다. 원통형의 모습은 절대자의 무한성과 시공간의 초월성을 나타낸다. 끝없는 무한자, 시바신으로서 위대한 신성을 표현한 것이다.

    4. 시바 뿌라나의 결혼신화

    시바신화의 결혼의 의미를 탐구하기 위해 시바 뿌라나의 결혼신화의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보기로 한다. 시바 뿌라나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판본에 따라 다양한 관점으로 나타나므로 중복을 빼고 결혼에 관한 이야기의 줄거리를 소생시켜보면 다음과 같은 시바신화로 재구성된다. 이 구성은 Wendy Doniger O'Flaherty 교수의 논고에 의한 것이다.

    브라흐마(Brahmā)의 따빠스가 창조를 할 수 없게 되어 까마(kāma)를 만들었으나 까마는 그에게 상처를 주었다. 그래서 브라흐마는 그의 딸을 원하게 되었고 그의 딸은 놀라서 사슴의 모습을 취하고 그에게서 달아나 버렸다. 브라흐마는 숫사슴의 모습을 하고 그녀를 쫓아갔고 그의 정자가 땅에 떨어져서 불 속에 봉헌물로 바쳐졌다. 그 속에서 여러 성자와 동물들이 생겨났다. 루드라는 브라흐마를 쫒아가서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브라흐마는 화가 나서 그에게 근친상간의 열정을 일으킨 까마가 시바신에 의해 파괴되고 자신을 우롱한 시바신을 까마로 자극되도록 저주를 했다.
    브라흐마의 아들, 닥샤(Dakṣa)는 그의 딸 사띠(Sati)를 시바신에게 신부감으로 주었지만 닥샤는 그의 희생제에 시바신을 초대하지 않았다. 화가 난 사띠는 분신자살하였다. 시바신은 닥샤의 희생제를 파괴하고 닥샤의 목을 베었으나 다른 신들이 시바신을 찬양하며 희생제를 복원시키고 닥샤에게 염소의 머리를 다시 붙여 주었다.
    시바신이 사띠가 자살하였다는 것을 알자 그는 그녀의 시체를 들고 슬퍼하며 춤을 추자 세상은 그의 춤과 눈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신들은 그 시체를 여러 조각으로 잘랐다. 요니가 떨어진 곳에서 시바신은 링가의 형태를 취하였고 우주에 평화가 다시 생겨났다.
    악마 따라까(Taraka)는 인드라(Indra)의 왕위를 찬탈하였다. 브라흐마는 따라까에게 수행에 깊이 몰두한 시바신에게서 태어난 아들만이 따르까 자신을 죽일 수 있다고 언약했다. 그 때 사띠는 히말라야(Himalaya)산의 히마와뜨(Himavat)와 그의 부인 메나(Mena)의 딸, 빠르와띠(Pārvatī)로서 다시 태어났다. 나라다(Narada)가 두 부부에게 딸이 시바신과 결혼하게 되어 있다고 말하자 처음에 그들은 매우 슬퍼했다. 그들은 시바신이 자신들의 딸에 어울리는 좋은 신랑감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빠르와띠는 시바신과 결혼하기를 바랐다. 인드라는 살랑거리는 바람의 모습으로 까마를 보내서 시바신이 빠르와띠를 갈망하도록 부추켰다. 그러나 시바신은 그의 제 삼의 눈에서 나온 불로 까마를 태워 재로 만들었다. 빠르와띠는 시바신을 남편으로 섬기기 위해 따빠스를 하는 중이었다. 시바신은 브라흐마짜리(Brahmacāri)로 변장해 그녀의 앞에 나타나서 신랑감을 형편없이 여기게 할 시바신의 모든 속성들- 그의 재, 세 개의 눈, 나체, 성에 무관심, 그의 뱀 그리고 해골의 목걸이, 화장터에 있는 그의 집 등을 묘사하여 그녀를 시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르외띠는 시바신에게 헌신하는 마음이 확고하였다. 시바신은 자신을 드러내어 그녀에게 구혼을 하였다. 그는 일곱 성자들을 히말라야의 그녀의 집으로 보내서 그를 대신해 빠르외띠에게 청혼의 예를 갖추게 하였다.....
    마침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시바신이 수행할 때 입은 옷은 신랑의 전통적인 예복으로 대신하여 쓰여졌다. 결혼식 때 브라흐마신은 사제로서 의식을 거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빠르외띠를 보자 흥분되어 자신의 정자를 땅에 떨어뜨렸다. 시바신은 브라흐마를 죽이고 창조자의 역할을 대신하려 했으나 비슈누는 시바신을 진정시키고 파괴자로서의 그의 역할을 완수해야한다고 만류하였다. 브라흐마신의 씨는 하늘에 있는 세상의 심판 날의 구름으로 변했다....
    시바신이 빠르외띠에게 돌아가서 그녀와 다시 관계를 갖기 시작하자, 신들은 그들의 대 사랑 놀이에 의해 발생된 알력에 놀라워하며 그들이 원하는 아들이 태어나지 않을 것이며 또 이 방식으로 태어난 아들은 우주에 위험이 될 것이라고 걱정하였다. 인드라는(새의 형태로) 아그니(Agni)를 그들의 침실로 보냈고 아그니가 그들을 방해하자 빠르외띠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성자의 부인들이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도록 저주를 내렸다. 그러자 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정자를 갠지스 강에 놓았다. 갠지스강은 그것을 갈대숲으로 던졌다. 거기서 목욕하는 여섯 끄르뜨디까스(Krittikas)가 그것을 받아들어 그들에게서 스깐다(Skanda)가 태어났다.


    5. 시바신의 결혼의 철학적 의미

    남신과 여신의 결혼은 고대의 여러 나라에 두루두루 나타나는 신화의 일반적인 양상이다. 하늘과 땅, 아버지와 어머니, 제우스와 헤라 중국의 음양, 티벳의 얍-윰(Yab-Yum)에 이르기까지 남성성과 여성성의 대립의 합일로서 나타난다. 생명의 여러 대립되는 양상들을 초월적으로 융합하는 것은 결혼에서 마치 두 개의 전혀 다른 성(性)들의 결혼에 의한 새로운 창조행위로 여겨졌다.
    1)실재(Reality)를 지식의 원리(knowledge principle)와 행동의 원리(action principle)의 결합으로 보고 지식의 원리를 남성적인 성격의 시바(Śiva)로 행동의 원리를 여성적 성격의 삭띠(Śakti)로 구분한 것이다. 전자는 정적인 원리, 후자는 동적인 원리이며 둘이 합쳐질 때 모든 사물이 생겨난다.
    여기서 시바띠 자신과 대상을 함께 비추는 작용을 하지만 작위성이 없는 의식의 원리이다. 삭띠는, 힘, 에너지란 의미에서 모든 우주적 활동과 기능을 하는 힘이다. 이를 여신으로 삼음으로서 여신은 남신보다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성격을 나타낸다. 열역학에서 에너지의 총량은 변하지 않으나 에너지의 형태는 변할 수 있다는 에너지의 제일 법칙처럼 우주 근원의 에너지는 변하지 않지만 여러 다양한 에너지는 수많은 여신으로 탄생한다.
    시바와 삭띠의 결합은 한 쌍의 부부(yāmala)를 이룬다. 한 쪽은 자신의 영원한 변화지 않는 본질에 의지하기에 휴식(viśrama)이라고 부른다. 다른 한 쪽은 그의 최초의 진동(prathamaspanda)이기에 ‘생성(udaya)'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궁극적 실재의 영원한 비밀이며 침묵도 소요도 아니거나 정과 동을 함께 지닌 흐르는 샘물이다.... 수동적이고 능동적인 양면이 동시에 힘과 힘의 소유자에게서 생겨난다. 능동적인 것은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이동하지만 수동적인 것은 자신 안에 머무른다. 그렇다할지라도 실제 이 둘은 한 쌍이 되어 동이 곧 정이다.’
    2) 시바신과 삭띠와의 결혼은 인도 어디에서나 풍부하게 보여지는 얀뜨라, 만달라 등 여러 쌍들의 포스처와 함께 이원론적 대립의 통일을 말한다. 슬픔과 기쁨, 덕과 악덕, 낮과 밤, 성자와 죄인, 고귀한 신분과 비천한 신분, 악마와 신들, 귀한 자와 천한 자. 개별자와 절대자, 부와 가난, 왕과 거지 .... 브라흐만과 백정, 천당과 지옥, 애착과 무집착.... 이러한 일상적 경험세계의 대립구조의 다양한 차별성이 상징적으로 표현될 때 남과 여의 대립이고 차별성을 초월한 것은 남과 여의 결합이다. 이것은 두 개의 다른 차원 초감각적, 초이성적인 절대적 세계의 시바신과 감각적 경험의 이성적, 상대적인 세계의 삭띠와의 융합으로 나타난다. 두 개의 이질적인 세계의 융합은 모든 영적인 문화가 이성의 개념적인 문화로 표현될 때는 이율배반적인 모순이 가득 찬 신비적인 표현으로 묘사가 된다.
    3) 산쓰끄리뜨 알파벳에서 시바는 첫문자 ‘A’이고 삭띠는 마지막 문자 ‘HA’이다. 그러므로 두 문자의 양끝을 연결하면 모든 문자가 포함됨으로 시바와 삭띠의 결합은 전 우주라는 의미도 된다. 두 번째 다른 해석은 두 소리의 연이은 발음은 ‘AHA’이고 이 둘의 소리를 한 군데 뭉친 전체 소리는 ‘AHAṂ’으로 본다. 이때 ‘AHAṂ’은 ‘나’란 의미의 산쓰끄리뜨 단어이므로 우주는 곧 나란 의미임으로 소우주와 대우주의 동일성을 나타낸다. 세 번째 해석은 ‘AHA’는 Visarga ':' (문법적 연결사가 아니며 산쓰그리뜨에서 알파벳처럼 음가를 지님)이고 ‘AHAṂ’은 한 점 ‘·’으로 표시함으로서 시바와 삭띠의 결합은 ‘둘이면서 하나’(two in one)임을 나타낸다.
    4) 인도 전통에서 브라만교(Brahmanism)은 브라흐만(Brahman)의 영원불멸의 존재(being)로 인도 베다와 우빠니샤드를 향해 자리매김 하면서 존재의 철학인 베단따(Vedānta)철학에서 특히 아두바이따(Advaita) 철학으로 황금의 꽃을 피웠다. 이런 ‘진리의 영원성’의 철학은 근대 사상가, 람 모한 로이, 아우로빈도, 라마크리슈나, 마하리스 라마나, 그리고 간디 사고에 영향을 미친 사상의 대 흐름이다. 이 영원성의 사상이 시바교(Śaivism)에서는 시바신의 초월성으로 연결된다.
    또 인도에서 불교는 오랜 비정통 사상으로 이런 영원성의 진리에 ‘변화’의 진리(becoming)을 주장하여 인도 전통에 자극적이고 대립적인 사상이 되었지만 이 변화는 우주 창조의 설명에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사상이다. 이런 변화의 사상은 삭띠의 개념으로 흡수된다. 그러므로 후기 시바종교에서 이런 영원과 변화의 진리를 수용하는 방법이 시바와 삭띠결혼으로 탄생되었다. 이제 시바는 세상을 떠난 시바가 아니라 삭띠와 더불어 세상의 삶을 주사위 놀이하듯 노니는 신으로 발전한다. 즉 브라만교과 불교의 존재(being)와 생성(becoming)의 진리가 합일된 사상으로 융합하게 되었다.
    5) 시바신은 뿌르샤(Puruṣa,정신)로 삭띠는 쁘라끄리띠(Prakṛti, 물질)로 표시되어서 두 개의 다른 차원의 합일을 말한다. 결혼이 두 개의 서로 다른 것의 합일(identity of differency)이라는 의미를 받아들이면 정신과 물질이 별개의 것이지만 합일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이런 이원적 철학은 인도의 고대 철학 상키야(Sāṃkya)에서 발달되었으며 상키야에서 뿌르샤와 쁘라끄리띠의 결합으로 세상의 창조를 설명했다. 마치 뿌르샤는 눈은 보이나 실질적 행위의 능력이 결여된 절름발이이고 쁘라끄리띠는 다리는 멀쩡하여 움직일 수 있으나 눈이 먼 경우로 이 둘이 합일할 때 온전히 보고 행위를 하게 되는 경우와 같다고 본다. 결혼의 비유를 신체장애자들의 협동으로 비유하였다.
    6) 인도 전통에서 신의 의지에 따른 진화의 과정은 두 과정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아가는 길(Parvṛtti-mārga)와 돌아가는 길(Nivṛtti-mārga)이다. 나아가는 길은 소유의 과정이고 쾌락의 길로서 세상에 적극 참여하여 더 많은 생각과 경험을 갖게 되는 분리의 길, 개별화의 길이다. 돌아가는 길은 공유의 과정이고 휴식의 길로서 자신으로 돌아오며 자신과 기타의 세계가 하나임을 깨닫는 과정이다. 시바신은 돌아가는 길로 금욕으로서 영원과 우주에 몰입하고 있었으나 나아가는 길의 상징인 삭띠와 결혼하여 두 삶이 조화로운 삶에 참여하는 길이다. 금욕하는 것과 쾌락의 조화, 우주의 평화 이 위에 삶의 순환이 영원히 반복됨을 말한다.
    이는 우빠니샤드의 뿌레야(Preya, 쾌락)와 슈레야(Śreya, 선)의 조화이다.
    뿌레야는 나아가는 길이고 슈레야는 돌아오는 길이다. 슈레야는 인간의 육체와 마음 그리고 영혼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선은 항상 감각에 즐거운 것은 아니고 또 감각기관의 쾌락은 항상 선하지만 않다. 실제는 항상 가장 해로운 것이 오히려 감각기관에 가장 큰 쾌락을 주고 진실로 유익한 것이 오히려 감각기관에 재미가 없거나 고통이 된다. 선과 쾌락은 서로 상당히 다르지만 둘 다 인간을 다른 의미로 사로잡는다.처음에는 독과 같고 끝에는 감로주같은 이 즐거움은 자아의 은혜로 지식에서 생겨나는 순수인 것이다.감각적 대상에서 생겨난 쾌락은 처음에는 감로주이나 끝에는 독인 것으로 이는 정욕적인 것으로 여긴다.
    몸에 좋은 것과 영혼에 좋은 것의 갈등은 시바의 삭띠의 만남으로 새로운 차원, 나아가는 길과 돌아오는 길, 쁘레야와 슈레야가 공존하는 세계에 들어간다. 이는 선하고 즐거운 것이 함께 하기에 두 가치의 갈등을 경험하지 않는다.
    7) 다섯 번째 해석은 시바신과 삭띠의 결혼을 영적 에너지 꾼날리니(Kuṇḍalinī)가 물라다라 짜그라(Mūlȁdhāra cakra)에서 사하스라 짜끄라(Sahasrāra cakra)로 상승하면 우리 안에 육체적, 심리적, 영적인 에너지가 합일되어 자기의 내면적인 통합의 절정을 이룸을 말한다. 이 신성한 내면적 의미의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자각의 절정이며 우주적 인식의 순간이다. 이때서야 인생은 태고의 의식 층에서 하나하나 그 지층이 제거되어 나오는 침묵의 고대 소리를 해독하게 된다. 이 경험으로 우주의 시작, 끝을 알며 과거, 현재, 미래를 알게 된다. 즉 우주의 형이상학적 시원을 알게 된다.
    심리분석적인 면에서 보면 꾼달리니가 일어나는 초기에는 성 에너지를 수반함으로 리비도(libido)의 무의식의 세계를 나타낸다. 그러나 꾼달리니가 상승할 때는 승화되어 의식의 에너지로 나타난다. 시바와 삭띠와의 결합은 성 에너지(Kāma- śakti)와 의식의 에너지(Citi-śakti)의 합일을 나타낸다.
    8) 시바와 삭띠와의 결합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팽창하는 형이상학적 점을 나타낸다. H. 짐머(H. Zimmer)는 말하기를 ‘남성은 우리가 영원이라고 알고 있는 수동적 측면의 의인화이고 여성은 활성적 에너지(Śakti) 즉 시간의 역동성에 대한 의인화이다. 외견상으로는 정반대의 것들이긴 하지만, 본질상으로는 하나이다. 이 동일성의 신비는 여기서 상징으로 설명된다. 남신은 남근의 뿌리 형상 속에 거주한다. 여신은 우주를 끊임없이 순환하는 영겁의 모태, 공간 속에서 끝없이 넓어지는 모든 우주들의 모태, 살아있는 세포 속에 있는 모든 원리의 모태이다. 그녀는 `우주의 힘(Śakti)' `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tri-pura-sundari)'로 불리며 신화 속에서 우마, 두르가, 파르와티, 칼리, 차문다, 가우리, 하이마바티, 빈디야바시니로 알려져 있다. 이 여신은 남신이 모든 남자들 속에 자신의 모사체(the counterpart)를 가지고 있듯이 모든 여성들 속에 살아있는 자신의 모사체를 가지고 있다.’

    9) 시바와 삭띠는 우리 내부의 두 자아를 말한다. 우리는 자신 안에 고차원적인 자아와 좀 더 저차원적인 자아와의 계속적인 분열이 있다. 좀 더 고차원적인 자아는 대답하는 자아이고 좀 더 저차원적인 자아는 묻는 자아이다. 전자는 의식과 이성에 지배되고 후자는 본능과 감정에 지배되는 자아로서 전자는 좀 더 보편성을 띠고 후자는 개별성을 띤다. 오직 저차원의 자아가 고차원의 자아에게 헌신함으로서 위계질서가 확립된다. 모든 비의적인 가르침을 시바 뿌라나에서 시바신은 선생으로 삭띠는 학생으로서 질문에 답하는 양식을 띄면서 가르침을 전수한다.

    “오 시바신이여, 우리의 사랑과 인류의 복지를 위하여 성의 본질을 설명해주시겠습니까? ”
    “나의 가장 사랑스런 자여, 내가 당신의 사랑에 젖어 있고 당신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소. 어찌 내가 그런 부탁을 거절할 수 있겠소?”

    의식 내에서는 고차원의 자아가 시바신이고 저차원의 자아가 삭띠 여신이다. 그러므로 외부의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을 때는 내부의 두 자아와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항상 대화를 통해 ‘인생을 진행 중’인 것이다.
    10) 시바는 영혼(soul)이지만 삭띠는 마음(mind)으로서 삭띠는 시바를 갈망하면서 통합을 이루려고 한다. 삭띠는 삼사라의 모든 변화의 영향을 받는 슬픔과 고통의 세계이고 시바는 불변의 영원성을 나타내는 니르바나 의식이다. 그러므로 삭띠는 시바와 결합할 때 안정을 얻게 된다.

    결혼이란 말의 사용은 ‘부부는 한 몸이고 한 마음’의 의미를 빌어서 두 개의 서로 다른 용어, 시바와 삭띠가 실제로는 동일한 실재(reality)를 가리킨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인 것이다. 같은 실재에 두 개의 다른 용어가 필요한 것은 인식론적인 면에서 실재의 상이한 관점을 나타나기 위해서다. 이런 남신과 여신의 결합으로 실재를 설명하는 것은 다른 종교에서는 라다- 끄리슈나(Rādā-Kṛṣṇa), 시따-라마9Sitā-Rāma)로 말한다.
    출처 : 반석의 신앙 따라잡기
    글쓴이 : peterba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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