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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남성 우월 신화 다시보기인문학의 즐거움은 2010. 10. 12. 12:46
남성 우월 신화 다시보기
남성다움이란 남성으로 태어난 인간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질, 자격, 해야 할 도리 및 역할 수행과 밀접하다. 이는 남성 특유의 본성이라기보다는 오랜 공동 생활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사회 경제적 조건에 의해 만들어져 정착되어 온 것이라 하겠다. 즉 남성다움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문화적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가부장사회를 떠받쳐 온 신화, 종교, 생물학, 심리학, 유교 및 금기담 등에서 남성다움의 뿌리를 찾아보고자 한다.
칼라일이 역사를 영웅의 전기라고 말했듯, 역사는 전쟁의 시대, 철인의 시대, 강력한 지배자의 시대를 만들고 그 속에서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는 남성 영웅을 탄생시켰다. 영웅 신화에서 우리는 남성이 어떻게 여성을 누르고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으며, 남성이 어떠한 성격을 이상으로 삼았는지 추측할 수 있다. 세계 영웅 신화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영웅은 대부분 혈통이 고귀한 사생아나 고아로 태어나 온갖 영웅적이고 무용적인 시련을 겪는다. 이들은 평범한 사람의 성취와 경험을 넘어서는 것을 발견하거나 이루어낸다. 싸움에서나 남을 구하는데서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 주며, 인간의 삶의 범주를 벗어난 힘겨운 체험을 하고 우리 삶에 유용한 메시지를 가지고 돌아온다.영웅은 아버지를 찾으러 떠날 나이가 될 때까지 어머니에게 보살핌과 가르침을 받는다. 영웅 신화의 중심 테마인 아버지를 찾는 여정은 자기 자신과 운명을 탐색하는 과정을 상징한다. 몸과 마음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지만 개성과 운명은 아버지에게 물려받는다. 아버지를 찾는 일은 영웅에게 자신의 이력과 이름 및 근본을 찾는 일이다.
이러한 영웅 신화는 남자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어머니에게서 떨어지고 삶의 정력을 온전히 자신에게 쏟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 과정을 통과의례라고 하는데, 입사, 성년, 취임, 결혼, 죽음 등 생의 전환점에서 묵은 것을 버리고 새 것을 맞는 의례다. 남성에게 통과의례란 남자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세계의 주인이 된 남성은 한 시대의 최고의 가치를 실현하는 다양한 영웅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웅의 유형에는 전사, 지배자, 성인, 현자가 있다. 그들은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의 초인적인 요소와 용맹과 지혜로움,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을 지닌다. 이들 영웅에 대한 이야기는 신화로 대중에게 전파되어 왔다. 신화는 한 집단의 성원이 행동하는 데서 모범으로 기능하며, 그 집단의 제도에 위엄과 중요성을 부여하는 힘을 지닌다. 어린 시절 동화에서 읽었던 영웅의 모험은 남성의 삶에서 인생의 좌표가 되기도 하고 가치관의 혼란에 부딪힐 때 남성은 영웅의 행적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싶어한다.현대에 와서 고대 영웅 전설이 영화화되고 전쟁 영화와 갱 영화가 흥행하는데에는 전사적인 영웅상을 새롭게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다. 여기서 그들의 용맹함과 지혜로움, 강한 완력을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남성의 꿈으로 등장한다. 『남자만의 고독』을 쓴 로버트 블라이는 신화와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영웅상을 현대의 왜소해진 남성에게 보여 주고 싶다는 의도를 밝히고 있다. 평원을 달리던 자연인, 악을 물리치고 지배자가 된 전사의 꿈이 현대 남성을 고독과 소외에서 건져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그러나 전사형 영웅의 화려함에 가려진 뒷면을 생각해 보자.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말로 유명한 나폴레옹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평범한 농민 출신으로 호탕함과 솔직성을 지닌 그는 사병들의 신뢰를 받고 프랑스 대중을 흥분시켰지만, 점차 이기적인 지배욕과 권력 의지로 전쟁과 파괴의 길을 걸었다. 그에게 매료되었던 베토벤이 "인민의 주권자도 역시 속물이었다"라고 후회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징키스칸, 시저, 광개토대왕 등도 남성이 흔히 떠올리는 세계의 지배자가 된 전사들이다. 그러나 세계를 통합한다는 이들의 빛나는 신조는 모든 군사 행동에 대한 자기 합리화의 한 방편이 된다. 따라서 영웅의 빛 뒤에는 파괴와 많은 대중의 희생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대중속에 묻혀 기계형 인간이 되어 버린 오늘의 남성에게 전사형 영웅은 이상화된 꿈이다. 수렵 시대의 사냥꾼처럼 호전적인 남성상을 부추기고 여성에 대한 우월 의식을 더욱 굳히는 남성의 이미지일 뿐이다. 이는 남녀 불평등으로 얼룩진 기나긴 인류의 역사가 이제 막 남녀 평등으로 나아가려는 시대적인 흐름을 거슬러, 남성 홀로 독주하며 주도하는 과거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일 뿐이다.
기독교의 경우 남성은 우월하고 여성은 열등하다는 의식이 구약 성서의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신화에서부터 개입된다.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한 인간은 아담이며, 그 남자의 갈비뼈로 그를 돕는 배필인 이브라는 여자를 만들었다. 이브는 호기심 많고 유혹에 약하여 낙원을 잃게 만든 원죄의 장본인이며 출산의 고통과 남편의 지배를 받는 벌을 받는다. 아담도 일생 동안 땀흘려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는 벌을 받는다. 하지만 이는 경제적 책임을 지는 대신 집안을 이끄는 권위를 부여받은 것으로 해석되기 마련이다.유대교의 탈무드도 남녀를 분리시켜, "남자와 여자는 신이 이미 그들에게 정해 준 그들의 이상적인 삶을 추구함에 서로 다른 길을 따르도록 기대"되었다고 명시하였다. 남성은 영적 영역을 담당하여 공동의 예배 의식을 갖고 하루 중 정해진 시간에 세 번 기도를 하며 종교적 학습을 통해 전통을 지키는 반면 여성은 종교적 의무에서 면제되는데, 그 이유는 가사와 아내 역할로 종교적 수행에 충실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슬람교의 코란에도 "신이 남성을 여성보다 우수하게 만들었고, 남자는 여자를 부양하는 데 자신의 재물을 사용하므로 여자는 남자에 귀속된다"고 써 있다. 남성은 가정을 다스리는 것을 포함한 세속과 종교 영역에서 우두머리가 되어 거의 제약 없이 다양한 역할을 담당한다. 여성의 임무는 남편의 시중을 들고 집을 지키고 자식을 많이 낳아 이슬람의 방식대로 교육시키는 것이다. 남성이 여성보다 탁월하므로 여성을 보호해야 하고 자기 재산으로 여자를 부양하기 때문에 복종하지 않는 여성은 타이르고 채찍질을 하라고 쓰여 있다.지혜로운 자가 되기 위해 남성이 갖추어야 할 덕목은 신중함, 엄격함, 금욕, 인내심 등이다. 이는 종교가 만들어 낸 남성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수도자다운 금욕과 절제, 자기 통제력은 영웅 신화가 주는 전사 이미지와 결합되어, 현대 남성들은 자신의 힘을 정신력으로 다스릴 수 있을 때 진정한 남성다움을 형성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종교는 성을 금기시하고 여성을 성적이고 어리석은 존재로 비하시키는 한편 남성을 우월한 구도자로 부각시켰다. 불교의 문헌에 보면 여성은 종교 수행의 장애물로, 성적으로 굶주리고 탐욕과질투심을 갖는 어리석은 존재이다. 따라서 여성에게 성적인 절제를 강요하고 기혼여성의 자유를 제한했다. 기독교 역시 수도자의 고행을 높은 가치 체계로 놓고 여성을 위험한 존재로 만들었다. 성은 남성의 힘을 약화시키므로 생산을 위해서만 허용해야 한다는 믿음이 성서를 통해 퍼졌다.나는 지혜롭게 계획을 세우고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더듬어 찾아 알아보려고 거듭 애써 보았다. 해답을 찾는 남자는 천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하지만 여자들 가운데는 하나도 없다. 나는 또 여자란 죽음보다도 신물나는 것임을 알았다. 여자는 새 잡는 그물이다. 그 마음은 올가미요 그 팔은 사슬이다.
성행위는 생식의 목적 이외에는 피하고 독신이나 금욕적인 삶을 더 나은 삶의 방식으로 올려놓았다. 교부 성 오거스틴은 "부부의 즐거움은 언제나 용서되는 죄이지만 폐경 후처럼 생식이 불가능할 때 성행위는 무서운 죄이다. 남자는 아내의 영혼을 소중히 하되 육체는 적을 보듯 미워해야 한다"고 말했다.힌두교에서는 나쁜 업의 결과 때문에 여자로 태어나므로 어떤 여성도 현세에서는 구제받지 못한다고 한다. 따라서 내세에 남성으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좋은 아내가 되어 남편에게 충실해야 구제될 수 있다고 한다. 마누 법전은 여성은 사악한 존재이며 구도하는 남성은 여성을 혐오하라고 가르친다.
여성은 본능적으로 남성을 유혹한다. 따라서 현명한 사람은 결코 방심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이승에서 바보뿐 아니라 배운 사람까지도 유혹해서 그들을 욕망과 분노의 노예로 만들기 때문이다. 어떤 남성도 자신의 어머니와 누이 또는 딸과 외진 속에 따로 떨어져 있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여성은 매우 강력한 영향력이 있어서 배운 사람조차도 정복해 버리기 때문이다.아울러 과부는 나쁜 업 탓으로 남편이 죽었기 때문에 격리되어 땅바닥에서 자고 금욕과 금기, 삭발, 남편의 재생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감시당하며, 순장당하기도 한다. 심지어 이슬람교에서는 성적 쾌감을 느끼지 못하게 여성의 음핵을 떼어내는 할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종교가 부여한 남성의 우월성, 신성에 가까이 갈 수 있는
도덕적 우월자로서의 남성상이 신이 내린 천부의 권리인가는 의심스럽다. 최근의 종교학자들은 가부장제적인 종교가 확립되기까지 여성신이 이단으로 사라져 갔던 과정과 여성성을 인정했던 그노시스파의 이단 재판,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 마녀 재판으로 제거된 여성 신의 세계를 재해석하려 노력한다. 이 과정은 현대의 종교가 가부장적 종교로 성립되어 왔음을 보여 준다. 현대에 와서 금욕적 이미지는 많이 변색했지만 남자는 강한 정신적 힘과 성의 주체로서 자신을 관리할 수 있는 도덕적 우월자라는 관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신화와 종교에서 나타나는 남성다움이 보편적인 남성의 특질을 규정한다면 유교는 한국의 특수성을 만들어 냈다. 유교는 집약 농업적 생산 양식을 경제적 바탕으로 한 조선시대의 국가 통치 이념이었다. 집약 농업은 일정 기간에 집중적인 노동력이 필요하므로 협력이 강조되었고, 남녀의 성 역할 구분이 뚜렷해서 남자는 생산자로서 그 위치가 커지고 여성은 어머니로서 출산과 양육의 역할이 강조되었다.이 시기에는 근본적으로 친족 중심적이며 수직적인 인간 관계가 이루어졌고, 국가 조직은 친족 집단 연장자가 행하던 권위가 확대되어 남성 중심적 연대를 강화했다. 따라서 남성은 국가에 대한 일정한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었다. 피지배 집단 남성도 한 집안의 대표자였고, 남성적 가치를 평가받았다. 그러나 여성은 비주체적인 존재로 권력을 통합하기 위한 혼인 동맹의 매개물로 이용되었고 생산물에 대한 권리와 성인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고, 생산 능력조차 제도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유교적 덕치주의로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한 양반들은 필연적으로 현세적으로 실용적인 가치관의 유교를 신성시했으며, 유교는 생활의 원리이자 행동의 규범으로 강조되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 양반층이 비대해지자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유교 윤리를 더욱 형식화하였고, 양반들은 문중 중심의 조직과 기존의 득세 가문끼리 뭉쳐 신분 확보를 꾀했다. 17세기 이후에 일반화되기 시작한 족보 간행, 서원과 향약을 중심으로 한 배타적 결사체의 활성화, 동족 부락의 형성은 이러한 양반 지배 질서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순수한 부계 혈통을 확보하고 가부장권을 강화하는 과정이었다.그 실례로 가족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내던 윤회 봉사가 장자에게 넘어갔고, 남녀가 똑같이 재산을 상속받던 것도 장자를 우대하고 남녀를 차별하여 상속하게 되었다. 족보도 형제 서열순으로 기록되던 방식이 남녀 순으로 바뀌었고, 사위와 외손의 가계도 기록되던 것이 사위와 외손의 이름만 올리는 식으로 변화하여 딸은 출가 외인이라는 의식이 강해졌다. 결국 유교적인 가부장제의 핵심적 이데올로기는 남성은 가정의 중심이 되고 여성은 집에서는 아버지를, 시집 가서는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좇는 삼종지도로 집약되었다. 또한 남녀 칠세 부동석, 사랑채와 안채의 분리,여자와 남자가 함께 상을 받지 못하는 관습, 바깥 양반과 안사람 구분 등 남녀를 격리시켰다.소학의 내칙에서는 "일곱살이 되면 사내 아이와 계집 아이가 자리를 같이 하지 않게 하며 함께 먹지 않게 한다. 열 살이 되면 바깥 스승에게 나아가 배워서 바깥방에 거처하고 잠자며 글씨와 셈을 배우게 한다"고 하였다.
사소절에서는 "남자가 오래 집안에 거처하면서 자주 규방에 들면 행동에 실수가 많고 명령이 잘 행해지지 않는다"고 경계할 정도였다.안으로 네 가지 마음가짐(四端 : 어질고, 의롭고, 예의 바르고, 지혜롭고)과 밖으로 아홉 가지 몸가짐(九容 : 발은 무겁게, 손은 공손하게, 입은 신중하게, 소리는 고요하게, 머리는 똑바르게, 숨소리는 고르게, 설 때는 의젓하게, 낯빛은 단정하게) 및 다섯 가지 떳떳한 윤리(五品 :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 임금과 신하의 의리, 남편과 아내의 분별, 어른과 어린이의 질서, 벗과 벗의 믿음)는 하늘이 마련한 근본 도리여서, 이를 잘 닦으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어기면 곧 훌륭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이처럼 남자가 갖추어야 할 성품과 행실을 통해 남성을 군자와 소인으로 나누었다. 군자는 사람의 도리를 지키는 사람이고 소인은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남성의 이상형이 바로 군자였다.이러한 남성다움은 명분적이고 문사 중심적이어서 자연히 육체 노동을 천시하였다. 대부분의 육체 노동은 남성답지 못한 사람에 속한 소인과 여성의 몫이었다. 여성은 양반이라 해도 군자의 도를 익히고 체면을 지키느라 실생활에 무능했던 남성 대신 농사나 품팔이 등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결국 이 시대의 남성다움은 상하 위계 질서를 나타내는 가부장제와 신분제가 결합되어 나타났다.
유교 윤리는 특히 금기담을 통해 일반적인 사회 풍습과 윤리에 적용되어 지방 구석구석으로 퍼져 상민에게까지 확산되었다. 비유의 기능을 가진 속담과 마찬가지로 금기담은 일상 생활을 규제하고 통제하여 은연중에 우리의 사고를 지배한다.남성에 대한 금기담은 주로 남자의 우월감을 담아 의젓하고 체통을 지키게 하는 내용이다. 특히 여성에게 남자의 존귀함을 알게 하고 함부로 대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기담에 보이는 남성다움은 크게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성이 여성보다 신체적으로 강함을 나타낸 금기담 남자는 죽어도 전장에 가서 죽어라.
남자는 배짱, 여자는 절개
둘째, 남성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금기담 장닭이 울어야 날이 샌다.
아내 행실은 다홍치마 때부터 버릇을 가르쳐 휘어잡아야 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눌리면 집안이 망한다.
남아 일언 중천금
사내 아이가 열다섯이면 호패를 찬다
(남자 나이 열다섯이면 한 사람 몫의 자격이 있으니 떳떳한 구실을 한다.)
남자가 셋이 모이면 없는 게 없다.
셋째, 남성들의 여성적 외모나 행위를 금하는 내용의 금기담
남자가 빨래를 널면 재수 없다.
사내가 부뚜막 맛을 알면 계집을 못 거느린다.
남자가 여자 옷을 입으면 출세하지 못한다.
남자가 바가지로 물을 떠먹으면 수염이 나지 않는다.
넷째, 여자에게 남자의 존귀함을 알리는 금기담
남자는 떡의 귀를 먹지 않는다.
남자의 옷으로 걸레를 만들지 않는다.
남자가 길을 떠날 때 여자가 앞을 가로질러 가면 재수가 없다.
남자가 바가지에 밥을 담아 먹으면 가난해진다.
남자가 밥상 귀퉁이에 앉아서 밥을 먹으면 출세를 못 한다.
이러한 금기담은 가부장제 역사와 더불어 우리의 생활 속에 스며들어 와 있어서 아무런 비판이나 반대하는 태도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불가피하게 남성과 여성의 행동을 제약한다. 특히 유교 전통의 영향으로 남녀 차별이 음양의 원리인 것으로 여겨졌다. 즉 음인 여자가 양인 남자를 따르며 그것이 바로 땅이 하늘을 따르는 자연의 이치라는 것이다.그러나 원래 우주의 원리인 음양은 빛과 어둠, 남성과 여성, 여름과 겨울, 죽음과 삶 등 중국 만다라를 의미했다. 그림처럼 검은 물고기 무늬에 흰 점이 있고 흰 물고기 무늬 안에 검은 점이 있는 음양 이미지는 상하 개념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상대적이면서 좌우 대칭의 동등한 원리를 나타낸다. 또한 이 음양 이미지는 남성과 여성은 각각 하나의 우주로서 남성적 특징과 여성적 특징을 고루 지니고 있음을 보여 준다.유교적 남녀 차별 문화가 완성된 주역(周歷)에 와서 음양의 원리는 상하, 지배와 피지배 관계로 바뀌어 남녀 차별을 거역할 수 없는 천도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조선 시대에 유교는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우리 나라 사람의 의식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주 만물은 음양의 적절한 배합과 유전에 따라 형성되며 남녀의 교합이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과 동일한 원리이다. 여성과 남성은 각각 음과 양의 원리를 드러내는 상징이며 이 양자는 결코 뒤섞일 수 없다. 그러면서도 이 둘은 하나만으로는 성립될 수 없는 상호 보완적인 성격을 갖기 때문에 동등하게 중요하다
생물학적,육체적으로 또는 정신 능력과 감정 조절 능력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선천적으로 우월하다는 신화는 과학의 이름으로 뒷받침 되어 왔다. 몇몇 과학자는 남녀의 신체의 크기, 무게 및 근육의 힘과 두뇌의 크기 등을 비교하여 남성의 강인함과 지적 우월성의 근거로 제시하였다.프로이드는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여성보다 우성이며 음경이 있어서 자신감과 만족감이 있다고 하였다. 남근기라 하여 네다섯 살쯤 된 남자 아이는 거세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탓에 어머니에 대한 성적 욕구를 억제하고 아버지에게 가졌던 적대 감정을 아버지에 대한 동일시로 바꾸는데, 이 과정에서 남자 아이는 아버지의 가치관을 택하여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며 공정성과 사회 정의에 관심을 갖는다고 한다. 또한 정자는 능동적으로 헤엄쳐 난자의 세포막을 찢어 결합하지만 난자는 스스로 움질일 수가 없는 점을 들어 남성의 능동성과 우월성을 설명하였다. 여기서 능동성은 외부로 향한 활동성과 공격성으로 이를 남성다움의 특징으로 보았다.골드버그도 고환에서 생기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에 의해 남자 아이의 두뇌는 훨씬 센 자극을 받으며 여자 아이보다 더 강한 공격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공격성은 남성다움에 속하고 동정과 연민 같은 감정은 본질적으로 여성다움에 속하여 여성에게는 공격성이 없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호르몬 이외에 남녀간의 차이는 없으나, 이 남성 호르몬은 가부장 제도와 남성의 지배, 남성의 지위와 역할을 획득하고, 여성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세함을 남성에게 부여한다는 것이다. 결국 생물학적 요인이 사회 제도를 불가피하게 만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양상이 다를 뿐이지 여성에게도 공격적인 충동이 있으며 단지 주위 환경에 따라 남성과는 다르게 공격성을 드러낸다. 직선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만을 공격성으로 규정하여 언어로 공격하거나 침묵으로 맞받아치는 것 같은 완곡하고 간접적인 대응을 공격 현상으로 보지 못할 뿐이다.남녀의 생물학적 차이가 심리적 성향을 결정한다는 논의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이의가 제기되었다. 무엇보다 뇌의 크기와 지능과는 아무런 상관 관계가 없다는 것이 총괄적인 결론이다.
1901년 앨리스 레이는 뇌 무게는 지적 능력과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그 후 신경해부학과 신경 생리학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뇌에서 아무 차이도 측정할 수 없었다. 오히려 19세기 프랑스의 신경외과 의사이자 자연 인류학자인 폴 브로카는 전두엽의 비율을 조사한 결과 뇌반구를 100으로 하여 남성이 427인 데 비해서 여성은 431이라고 밝혀, 실제 뇌의 크기, 모양, 지능을 감싸고 있는 전두엽은 여성이 더 크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과거에 힘과 완력이 필요했던 전쟁이나 근육의 힘에 의지했던 일들이 기계로 처리되는 오늘날과 같은 사회에서, 남성의 건장한 체구와 완력이 사회 생활이나 생존에 크게 도움이 될는지는 의심스럽다. 프로이드조차도 후에 원래 양성은 능동적인 목표와 수동적인 목표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하여 초기의 남녀의 심리적 차이와 특성에 대한 주장을 번복하였고, 남성의 특성은 가부장적인 사회 관습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였다.
남자든 여자든 모두 두 개의 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남녀의 성격 차이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남녀는 두 개의 성을 모두 갖고 있다. 생식기관조차도 한쪽의 성은 다른 한쪽의 성 기관을 축소시킨 형태를 갖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남녀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남자도 수동성을 보여 주고 여자도 능동성을 나타내는 것을 보면 심리학적으로도 남녀는 두 개의 성을 모두 지니고 있다.인간은 독특한 유전적 체질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다. 사람의 형태, 얼굴 특징, 신체적 성적 달 속도, 기질은 대부분 유전적으로 결정된다. 허약한 사람에게 현실적으로 힘드는 활동을 잘 해낼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어린아이의 성향, 외모, 발달 속도는 부모와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공격적인 성향을 높이 평가하는 공동체에서 태어난 아이는 대부분 적극적으로 난관을 극복하고 힘차게 투쟁하는 것에 익숙할 것이다. 나약한 아이라면 제대로 현실 생활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될 것이다. 우리는 흔히 똑똑한 아이, 둔하고 못생긴 아이, 매력적인 아이, 약한 아이, 건강한 아이 등에 대해 제각기 달리 대한다. 그리하여 그 반응에 따라 어린아이의 자아가 다르게 형성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
오늘날 어떠한 타고난 특성이나 유전적 기제도 인간의 심리적, 성적 차이를 미리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남성과 여성은 차이보다는 유사성이 훨씬 많고 오히려 동성끼리의 차이가 남녀 양성간의 차이보다 훨씬 큰 편이다. 생물학적 요소들이 남성이나 여성의 성 역할 행동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는증거는 어느 과학적 연구에서도 그 타당성을 찾아볼 수 없다. 그보다는 생물학적 요소들과 사회문화적 환경 조건이 상호 작용하여 일정한 행동 유형을 만들어 낸다. 남녀 모두가 남성적, 여성적 행동 능력을 다 갖고 있으며, 그러한 생물학적 잠재력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데는 일정한 환경적 조건이 필요하다.와이젠슈타인의 말처럼 과학을 통해 남성의 우월성을 증명해 보려는 갖가지 학설은 남성과 여성의 성격이나 욕구를 과학적으로 해명하기보다는 사회에 맞는 인간을 만들기 위해 남성과 여성에 한 고정관념을 만들어 믿도록 해 왔다. 남성다움은 생물학적이라기 보다는 문화적인 영향을 더 크게 받으며, 시대와 지역의 문화에 따라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양상이 다르다. 생물학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보여주는 배경이 될 수는 있으나 한 사회에서 남녀를 차별하고 남성다움을 미리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남성다움을 뇌의 세포조직, 호르몬, 생리학에서 증명해 낼 수 없었으며, 해부학과 생물학에서 증명된 사실만 가지고 사회적 역할을 남녀에게 서로 다르게 할당하거나 남성은 남성다워야 하고 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출처 : 가정행복학교글쓴이 : Family Coaching 원글보기메모 :'인문학의 즐거움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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