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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중세의 지식여성 힐데가르트 폰 빙엔-가져온 글
    인문학의 즐거움은 2011. 12. 17. 10:34

     정미현
      생태여성신학의 선구자: 힐데가르트 폰 빙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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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사상] 1998년 9월호-모든 각주는 온라인 상의 원고에는 빠져있음

    생태여성신학의 선구자: 힐데가르트 폰 빙엔

    정미현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강사, 조직신학)

    I. 들어가는 말
    세 번째 천년의 시대를 앞둔 격동의 변화기에 나는 두 번째 천년이 시작되던 때 살았던 중세기의 한 인물을 소개하고자 한다. 과거의 인물을 들추어보는 것은 과거로의 단순한 회귀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를 모색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써의 작업이 될 수도 있다. 그녀는 중세기의 여성들 가운데 가장 특출했던 인물가운데 한명이었으며 미래 지향적인 경향성을 지닌 여성이었다. 기독교인뿐 아니라, 뉴에이지 운동가, 식물학자, 관광객, 음악가, 포도주 애호가들에게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이 여인은 누구인가? 신학자, 설교가, 작곡가, 자연물리치료사였으며 "빙엔의 보석", "독일의 가장 훌륭한 여성예언자", "최초의 여의사", "여성 약초 전문가"로 불리었던 이 여인은 어렸을 때 부터 환상을 보기 시작하였고, 그녀의 삶은 부조화, 불일치로 가득한 세상을 변화시키고, 하나님, 인간, 자연의 우주적 연관성에 대한 믿음에서 개혁을 향하여 헌신한 인물이었다. 분열되고, 안에서 부터 병들어가던 교회의 모습에 대한 그녀의 비판의 외침은 다가올 종교개혁을 예언적으로 선취하고 길을 예비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사의 책을 보면 그녀의 이름이 거의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녀는 심지어 오랜동안 남성들에게 뿐 아니라 여성신학자들에 의해서도 별로 주목받지 못하였다.

    II. 그녀는 누구인가?
    올해로 탄생 900주년을 맞는 힐데가르트 본 빙엔(Hildegard von Bingen 1098-1179)은 독일 중세기에 살았던 가장 의미있는 여성중의 하나로 꼽히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매튜 폭스(Matthew Fox)는 그녀를 "라인강 유역의 신비주의 운동, 창조 중심 영성운동의 조모"라 표현한다. 그녀는 1098년 라인헤쎈지방의 베르메르스하임(Bermersheim)의 귀족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미 3살 때 특별한 "환상"을 보기 시작하였고, 8살 때 그녀는 여성 은둔자(Klausnerin)인 유타 폰 스폰하임(Jutta von Sponheim)에게 위탁되었다. 그녀는 특별한 교육제도권에서라기보다는 초기 스콜라주의의 "교과과정(Curriculum)"을 통하여 교육을 받은 정도였고, 베네딕트 규율에 따라 훈육되어졌다. 유타의 죽음이후 1136년 그녀는 급속히 성장한 수도공동체의 지도자(Meisterin)로 선출되었고, 1148년경에는 빙엔에서 루퍼스 산(Rupertsberge)위에 수도원을 건립하였다. 또한 1165년에는 이 수도원의 지부(ein Filialkloster)를 뤼데스하임(R desheim)상부지역의 아이빙엔(Eibingen)에 세우게도 된다. 그녀는 마치 마리아와 마르타의 결합체인 것처럼, 활동적인 많은 일을 해나아가면서도 끊임없이 명상생활에 몰두하였다. 그리고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목소리에 귀기울였던 것인데, 그녀가 43세 되었을 무렵인 1141년 극적인 환상체험을 했다. 그 소리는 "네가 보는 것을 글로 적고, 네가 듣는 것을 말하라!"라고 끊임없이 그녀에게 명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참으로 특별한 통찰은사(Sehergabe)를 지닌 존재였다. 1141년에서 1151년까지 약 10여년에 걸쳐 그녀는 우주론과 인간론이 신학과 조화된 신앙론(Glaubenslehre)이라고 할 수 있는 책 "Liber Scivias"를 저술하여 내놓는다. 1158년과 1163년 사이에 덕과 악덕사이의 대화록이라고 할 수 있는 "Liber vitae meritorum"을 저술하였고, 1163년과 1173년 사이에는 하나님의 사역을 주제로한 "Liber divinorum operum"를 저술하였다. 이 책에서는 세상의 창조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구원사를 전개하고 있다. 1150년에서 1160년 사이에는 민간요법으로 널리 사용되는 의학, 과학서적으로 평가될 만한 책이며 식물, 동물, 섭생에 관한 Liber Simplicis Medicinae-Physica와, 인간의 질병과 치료에 관한 Liber Compositae Medicianae-Causae et Curae을 저술하였다.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도 그녀의 관찰과 고유의 경험이 돋보인다. 이외에도 황제, 왕족, 종교지도자, 유럽전역에 퍼진 사람들에게 보낸 300여통이 넘는 편지와 77개 노래, 송가, 신비적 음악집인 Ordo virtutum등이 전해진다.

    그녀는 수녀였으나 수녀원의 정원에 조용히 묻혀 지냈다기 보다, 서신교환을 통해서나, 공적인 연설 등을 통해서나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매우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삶을 살았다. 그녀의 글들은 당시 신학교수에 비견될 만한 명료함을 지녔다. 또한 그녀는 수녀원에서 뿐만 아니라, 저자거리에서도 공공연하게 설교하였다. 그녀는 당시의 세상을 돈과 위선이 지배하며 파괴가 자행되는 세상으로 규정지었으며, '성스러운' 로마가 이에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교황에게 보내는 글에 쓸 정도였다. 이는 그녀가 정치적으로도 뛰어난 식견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는 일면이다.
    "살아있는 빛(lebendiges Licht)"을 보는 가운데 그녀는 가장 훌륭한 독일의 여성예언가(Prophetissa teutonika)로서의 말씀선포와 파송의 임무를 수행하였다. 신 적인 목소리는 그녀에게 상징적 영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경세의 신비(die Mysterien der Heils konomie Gottes)를 보여준다. 문학작품, 설교, 편지등으로 당대에 특멸히 유명했던 그녀는 정치, 사회 지도자들 뿐 아니라, 종교지도자들에게도 주목받던 인물이었다. 교황 에우제니오 3세(Eugenius III)는 그녀에게 아버지처럼 호의를 가졌다. 1159년에서 1177년의 교회분열(Schisma)에서 힐데가르트는 처음에 중립적 태도를 보이다가 나중에는 맹렬히 이를 거부하였다.

    수녀원 공동체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그녀의 능력 또한 뛰어났다. 수녀원을 이끌어 나가며 그녀는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 바바로싸(Friedrich Barbarossa)에게서 특별히 수녀원을 보호받게하는 편지를 받기도 하였다.(Hildegard von Bingen이라는 이름도 그에게서 얻은 명칭이다). 또한 그녀가 설립한 수녀원의 근대적 양식의 건물은 위생적이며 실용적이었다. 이러한 것을 기반으로 하여 수녀원에서는 훌륭한 많은 사업들이 전개되었다. 그녀는 수녀원에서 어머니이며, 현명한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했으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녀를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을 축복하고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병자와 가난한 자들을 특별히 돌보았고 사람들을 건강한 삶으로 유도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또한 그녀에게서 상징주의(der Symbolismus)가 최고조로 빛을 발한 것을 볼 수 있다. 1143년 그녀는 신학적으로 큰 변화를 갖는다. 마인츠의 주교, 클레보의 베르나르트(Bernhard von Clairveaux)와 교황 에우제니오 3세(Eugenius III)도 마침내 그녀의 환상을 '사적 계시들( Privatoffenbarungen)'로서 인정하기에 이른다. 이후 그녀는 '살아있는 빛'안에서 그녀가 본 것을 공개한다. 그녀의 저서, 설교, 편지들은 이러한 힘들로부터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그녀는 황홀경(Ekstase)이나 무의식(Bewusstlosigkeit), 제한된 인지의 상태가 아니라, 맑게 깨어있는 정신과 온전한 사고를 통하여 전한다. 그러므로 힐데가르트를 둔감한 예언자나 불가해한 비의교도(Esoterikerin)로 자리매김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녀의 환상들은 이성적 해명과 신학적 숙고를 요청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특별한 교육제도의 혜택을 받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당대의 신학(특히 구약신학에 정통하였다)과 철학의 내용을 통찰하였고, 자연과학과 의학에 두각을 나타내었을 뿐 아니라, 농사짓고 고기잡는 법을 포함한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 포괄적인 지식과 지혜를 지녔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스스로 시를 짓고 곡을 붙이는 예술적 재능도 지녔다. 우주, 세계,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저술들은 중세기의 의학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루퍼스베르크(Rupertsberg) 수녀원은 1632년 대부분 파괴되었고, 그녀의 유품은 현재 아이빙엔(Eibingen) 주교회에 보존되어있다.

    III. 힐데가르트 사상의 세계
    "4-13세기에 라틴어는 교회와 국가의 보편적인 언어로서 거의 독점적인 권리를 지니고 있었다." 중세 라틴어는 포르투나투스(Venantius Fortunatus 535-600)의 시대에서부터 알쿠인(Alcuin 735-804), 간델스하임의 로스비타(Roswitha von Gandersheim 935-1000), 빙엔의 힐데가르트(Hildegard von Bingen 1098-1179)를 거쳐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z von Assisi 1182-1226)가 저술한 "태양의 노래"에까지 이르는 일체의 문학, 나아가 보에티우스(A.M.T.S. Boethius) 480-525)의 신학적, 철학적 산문에서부터 안셀무스(St. Anselmus 1033-1109)를 거쳐 보나벤투라(J.F. Bonaventura 1221-1274)와 둔스 스코투스(J. Duns Scotus 1266?-1308)에 이르는 모든 것과, 그외에 언어로 사용되던 단어들을 포함한다. 중세 라틴어는 미사뿐 아니라 법적, 정치적 성격의 공식행사들이나 설교, 국제간의 외교적 접촉에서 사용되기도 하고 "Carmina burana"와 같이 노래로 불려지기도 한 언어이다. 이처럼 힐데가르트의 언어세계는 남성중심적 라틴문화의 절정기에 여성으로서 드물게 그 가치를 인정받는 특별한 것이었다. 여성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여건이 열악했던 상황에서 힐데가르트는 라틴어를 구사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하여 나름대로의 학문세계를 구축하였다는 점만으로도 높이 평가받을 만한 인물이다.
    힐데가르트 사상의 세계를 볼프강 피에코타(W. Piechota)는 의식의 세가지 창으로써 다음과 같이 유형적으로 재미있게 표현했다.

    1. 하늘로 향한 창
    그 첫 번째는 종교적 체험의 영역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적 만남의 차원이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대로는 아니지만 경험된다. 이러한 경험은 예식문, 성찬, 성서주석, 시편찬송 등으로 교회에서 표현된다. 그녀는 간단한 라틴어를 배우고, 베네딕트회 규율을 따르며 집중해서 책읽는 신앙훈련을 하였다. 베네딕트회에서 힐데가르트는 그녀의 개인비서가 된 폴마(Vollmar)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하늘로 향하여진 그녀의 환상들(Visionen)과 생각들(Gedanken)을 신중히 기록해 두었다가, 그녀와의 대화를 통하여 이를 수정, 보완하여 편집하였다.

    2. 마당으로 열려진 창
    두 번째로는 사회적 의식의 영역이다. 이것은 인간과 인간사이의 수평적 관계의 차원이며 일상적 삶가운데 벌어지는 다양한 모습들과 소리들을 포함한다. 건축현장의 소리, 행인들의 소리에 그녀는 언제나 귀기울였고, 수도원의 종들과 방문객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상담을 요하는 사람들을 항상 목회적 돌봄으로 감싸안았고 환자는 약초들을 갖고 보살폈다. 그녀는 일상생활로 부터의 배움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녀는 극도의 겸손과 겸양의 태도를 보이며 그녀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였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당대의 상아탑의 신학자들과 차별성을 두는 것이다. 당시의 스콜라 신학을 주도했던 신학자들이란 안셀름(Anselm von Canterbury), 아벨라르(Petrus Abaelardus), 베렝가르(Berengar von Tours)등이었는데 그녀는 이들과 자신을 비교하거나 이들의 척도로 자신이 평가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3. 정원으로의 창
    마지막으로는 자연, 환경친화적 사상의 영역이다. 이것은 인간과 자연의 수평적 관계의 차원이다. 그녀는 자연과 그 현상, 날씨, 특히 바람에 관심, 강물고기, 광물, 전통적 민간요법등에 전반적인 관심을 가졌으며, 자연의 모든 세부사항은 전체의 조화, 즉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로써 보았다. 육체는 물질적 요소, 영혼은 조화를 이루는 삶의 정신적 질적 차원이다. 그녀는 이원론적 구조로서가 아니라, 조화와 통합(Einheit)으로서 물질과 정신, 인간계와 우주, 자연과 역사를 바라보았다. 또한 세계전체를 밝고 다양한 색깔의 그림들로 본다. 그럼으로써 세계는 그녀에게 공기, 불, 에너지와 같은 층으로 둘러싸인 원형, 달걀형으로 보여지고 동서남북의 4방향, 우주안에 4요소, 은하계, 생물체가 그들의 자리를 갖는다. 소우주인 인간은 대우주안에서 팔을 뻗친 형태로서 그려진다. 신체의 각부분의 요소들은 우주의 요소들과 상응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보이지 않는 끈과 같이 결합되어있다.


    IV. 힐데가르트 사상의 특징
    1. 창조와 구원의 내적 통일성
    이 세계창조의 근원적 힘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창조와 계약은 내적으로 연관된다. 사랑은 우주(Kosmos)의 가장 근본적 힘이다. 이러한 근본적 힘이 생명을 지탱하는 녹색의 힘(Gr nkraft)이다. 온 세상은 사랑을 통하여 의미있는 구성을 이루게 된다. 이 세계의 중심에 인간의 형상이 있다. 이것은 위계질서적으로 인간의 지배력을 강조하려는 인간중심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우주의 모든 존재를 가능케하는 생명의 근원적 힘, 초록빛의 생기(viriditas)가 무생물과 생물, 치유력을 지닌 광물, 식물, 동물의 세계에 모두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이러한 힘은 인간이 느끼는 윤리적 책임과도 연결된다. 인간의 뒤틀려지고 오염된 행동을 통하여 이러한 근원적 힘이 망가지고, 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힐데가르트는 하나님의 창조를 거역하는 것, 그리고 그 결과로 소우주와 대우주의 상호의존적 관계성을 파괴하는 것을 죄라 보았다. 그녀의 생태신학적 자각의 의미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녀는 이러한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의 의미를 강조하며 특히 요한복음에 관심이 많았다. 사랑의 힘이 죄로 물든 구름에 가려지게 된 뒤 나타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이 스스로 계시하신 말씀의 성육신 사건(In principio erat verbum)을 힐데가르트는 강조하였다.

    "땅은 동시에 어머니입니다.
    땅은 모두의 어머니입니다.
    모두의 씨앗들이
    땅에 보듬겨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땅은
    모든 촉촉함과
    모든 푸르름과
    모든 발아시키는 힘을 보듬고 있습니다.
    땅은 너무도 다양하게 풍성한 결실을 냅니다.
    이것은 정말이지, 단지
    인류에게 기본이 되는 재원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의 실체까지도 꼴지어 줍니다.

    말씀의 성육신사건은 마리아를 통하여 이 땅에 열매맺게 되었다. 마리아는 땅의 마리아(terra maria)라 불렸다. 이것은 마리아를 자연신, "어머니로서의 땅"의 의미에서, 즉 기도의 대상으로 숭배하자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담지자(Gefaess)로 본 것이다. 하나님의 생명의 힘(Gruenkraft-viriditas)이 그녀에게 선사되었으며, 하나님의 생동감있는 힘은 자연안으로 들어갔다. 성육신은 인위성이 배제된 채 자연적인 과정(Vorgang)으로 이해되었다. 이 사건은 첫 번 창조의 대비가 아니라, 첫 창조의 완성인 것이다. 마리아는 스스로 계시된 말씀의 그릇이다. 구원자는 그 안에서 자라났다. 여성적 수용력(Empf nglichkeit)은 이러한 형상들(Bilder)을 통하여 교회의 존재적 특성이 되었다.

    2. 성육신 사건에 기초한 신인식론
    힐데가르트의 성서주석의 기본문제는 적절한 신인식론에 대한 질문이다. 인간은 이성적 인식안에서 살아있는 피조물가운데 하나님의 선한 창조로서의 질(Qualit t)을 느낀다. "말씀(Wort)", "울림(Klang)", "빛(Licht)", 하나님의 계시된 사역(Werk)을 드러내는 현상들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인식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이해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이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은 인간을 하나님의 대화 상대자로 삼아주는 특징(das Merkmal)이다. 이성은 인간을 "투영시키는 존재(Spiegelwesen)"이다.
    모든 환상가운데 창조와 계시 사역을 주제로 한 그녀의 신학적 작업은 그녀의 독특한 하나님의 형상(Gottesbild)을 상징적으로 말하게 한다. 구원자는 그녀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그러나 그녀는 구원자를 소유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신성을 축소하지 않고, 완전히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것은 바퀴(Rad)와 같이 둥근 것이다. 그 말씀은 모든 것을 창조하고 선을 완성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모든 인간은 이 말씀에 그의 마음의 모든 것을 바쳐 자기 마음을 열고 몸과 영혼의 구원이 인간의 입을 통하여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인 나(출 3:14)"를 통하여(durch Mich, der ich bin) 말해짐을 아는 것이다.

    "하나의 바퀴가 내 눈에 보였습니다.
    그 바퀴를 보는 것은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신성은 전지전능하며
    하나의 바퀴,
    하나의 원,
    하나의 통일체와 같습니다.
    그것은 이해될 수도
    나뉠 수도
    시작될 수도
    종료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예지(Vorherwissen)와 행함(Wirken)가운데 둥근바퀴와 같은데, 그것은 하나의 전체로서 어떤 방법으로도 분할할 수 없는 것이다(Velut rota integra)..." 바퀴의 둥근 원을 우리가 따라가보면, 우리는 시작도, 끝도 없고 출발점도 종착점도 없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은 자신을 인간에게 해당되는 전제에 따라 자리매김하지는 않는다. 인과성(Kausalit t)은 인간의 사유를 지배하는 기본적 특성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적으로 다르다. (Gott ist der ganz andere!) 인간에게는 바라봄(Anschauung)과 형상(Bild)에 대한 근원적 희구(tiefe Bed rftigkeit)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적 형상은 잘못 사용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성을 경고하며 힐데가르트는 하나님 자신을 하나님 자신에 기인한 "바퀴"의 형상으로써 해명하여 보고자 한다. 첫째로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의미이며, 둘째로 하나님을 형상적으로 찾고자 하는 인간욕구의 긴장성을 채워주는 것이다. 이러한 형상은 우리에게 성급한 개념정의나 답변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우선 묵상하도록 한다.

    하나님은 말씀의 성육신사건을 통하여 인간과 대화를 시작하셨다. 힐데가르트는 하나님이 우선적으로 '자신안으로(in sich hinein)' 말씀하신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하나님은 절대 독립적인 주체로 남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유로운 말씀이 인간에게로 향하여진다. 그것은 사랑가득하고, 친절하게 말을 건네는 것(Anrede)이다. 그러한 말 건넴은 살리는 말이다. 힐데가르트의 언어에는 "빛"과 "말씀"이 상징적으로(bildhaft) 서로 교류된다. 말씀이 세상을 밝고 생기있게 만들고, 빛은 우정어린 언어로 말한다. 이렇게 말씀은 모든 피조물을 빛으로 인도한다.

    "...말씀은
    살아있고, 존재하고, 영이고,
    푸릇푸릇한 신록이고,
    일체의 창조성입니다.
    울려퍼지는 가락,
    곧 하나님께서 말씀을 행사하심으로써
    모든 피조물이 깨어나고
    부름을 받습니다..."

    3. 음악을 통한 조화
    음악가로서의 힐데가르트를 고찰하는 것도 주목해야 할 중요한 한 주제다. 그녀는 역사를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합창(sinfonia)"으로 간주한다. 예배는 우주적 화음에로 참여하는 것이고, 시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악마적 불협화음으로 본다.
    그녀는 물리치료사로서의 역할도 감당하였는데, 특히 음악치료, 대화와 공동체 생활, 규정된 규율로써 정신분열치료를 시도하였다. 신학적으로 조망하여 본다면 치유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근원적 힘을 강화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그녀는 건강비법도 소개하는데 비의 종교적(esoterisch) 마력으로서가 아니라, 사랑가득한 어머니다운 돌봄의 힘으로 치유하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음악을 단순한 도취의 영역에서 애호한 것이 아니라, 치유의 힘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음악을 통하여 저항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생의 마지막 시기에 힐데가르트는 그녀의 독특한 음악이론을 구체적이며 일상적인 긴장과 갈등속에서 주장하여야만 하였다. 마인츠의 수도원장들이 그녀를 그렇게 몰아세웠다. 사건의 발단은 한 귀족의 시신을 그녀가 원장으로 있는 수녀원 공동묘지에 안치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가 파문당한채로 죽었는가, 신앙 안에서 죽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힐데가르트는 죽은 자가 성스러운 땅에 안치되었으니 되었다는 것이었고, 마인츠의 수도원장들은 의견을 달리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마인츠의 성직자들은 그녀에게 예배와 예식을 노래로 부르는 것을 금하는 성무금지(Interdikt) 판결을 내렸다. 81세가 된 수녀원장 힐데가르트는 비통함을 맛보았으나 81살된 탄탄한 신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정말 무엇이 문제인지를 밝히는 청원서와 권고의 서신을 썼다. 인간은 천상의 존재와 천사들과 함께 합창하도록 지음받은 존재이다. 작곡을 하지 않거나, 노래하고 시편을 송독하거나 춤추지 않는 자는 하나님 찬양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주장하였다. 마인츠의 수도원장들이 아니라, 로마에서 돌아온 대주교(Erzbischof) 크리스티안(Christian)은 이러한 그녀의 논리앞에 굴복하였다. 1179년 9월 그의 사과편지를 죽어가던 힐데가르트가 읽었는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창조된 삶은 율동감 있는 조화이다. 음악은 움직임(율동감)이다. 음악가로서의 힐데가르트는 협화음(Sinfonia:Zusammenklang)으로 세계의 구조를 느낀다. 중세기에 음악은 산술학, 지리학, 천문학, 문법학, 수사학, 변증학과 함께 기초학문으로서의 "일곱가지 자유 예술(die Sieben Freien K nste)"의 다양함 가운데 하나이다. 음악으로서 조화가 가늠될 수 있다. 인간의 삶은 힐데가르트에게는 피조되고 구원된 자로서 소리가 나게되는 악기들인 것이다. 음악의 위대한 세계는 인간적 성격을 통하여 창조자에게 화답하며 울려나게 된다. 인간은 그러므로 음악과 밀접하게 연결된 존재이다. 인격(Person)이라는 라틴어 자체가 per와 sonare의 합성어인 것처럼 인간은 존재자체가 소리, 음악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이들은
    우리의 자아에서
    생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화음,
    곧 악기를 연주할 때 나는 소리와 같습니다.
    그 소리는 현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연주자의 터치를 통해 나는 것입니다.
    물론 나는
    다정하신 하나님의
    리라와 하프입니다."

    4. 몸과 영의 조화
    우리는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 많은 좋은 것들을 지나쳐 버린다. 우리는 우리와 더불어 살아야하는 이웃피조물(Mitgesch pf)을 괴롭히며 사는 존재이다. 우리 주변의 모든 요소들, 부분들이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안에서 가르치시는가를 설명한다. 우리는 피조된 이웃과 더불어 함께 하나님을찬양하고, 창조세계를 채워나가야 한다.
    빛은 복합적 의미를 갖는다. 힐데가르트는 이성과 앎, 신앙을 동일하게 가치설정한다. '안다는 것(Wissen)'은 '양심(Gewissen)'의 의미에 관련됨으로써 또한 윤리적 의미를 지닌다. 빛이 어두움에 비치면 어두워지고 악하게 된 세계 가운데 선한 것을 인식하는 것이 시작된다. 이러한 인식의 장소는 인간의 마음(das Herz)이다. 구약성서적 지혜서에서와 같이 힐데가르트는 마음을 의식하여 행위하는 자아(ich)의 결정적 중심으로 이해한다. 마음과 영은 육체에 의지력과 방향성을 부여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연안에 두시되
    힘을 갖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창조계의 발판으로 감싸여 있습니다.
    우리는 봄으로써 세계전체를 인식하고
    들음으로써 이해하고
    냄새를 맡음으로써 분간하고
    맛을 봄으로써 양육되고
    어루만짐으로써 다스립니다.
    이렇게하여 인간은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지으신
    장본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몸과 영혼은 하나님을 성찰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분리되거나, 영지주의적 이원론에서 설명되듯 대치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몸은 하나님 인식의 그릇과 같은 것으로 힐데가르트는 설명한다. 머리로부터 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흔적을 좇는다.
    1. 눈은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담는다. 눈은 구별을 가능케한다.
    2. 귀는 하나님의 소리를 받아들이며, 모든 창조의 요소들이 통합된 찬양을 듣는다.
    3. 코는 지혜의 향기와 더불어 이 세계에 가득찬 오류와 그릇된 행위 가득한 연기의 냄새를 맡는다.
    4. 입은 하나님이 그 안에 역사하시는 때, 사랑 가득한 화해의 소리를 말한다.
    5. 팔은 세계를 싸안고 측량한다.
    6. 위는 물질을 흡수하고 배설하여 생명을 유지한다.
    7. 다리와 발들은 방향을 설정하고 걷는다.
    인간의 오장육부는 모두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밝혀지지 않은 비밀로 남는다. 힐데가르트는 영, 마음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 육체성 자체의 중요성 또한 강조한다.

    힐데가르트의 시대에 제도교회의 설교와 대조를 이루며 충돌하던 영지주의자들은 여기에서 힐데가르트로부터의 분명한 거부를 경험한다. 그들은 몸을 경멸하고, 영혼에서의 신적인 빛의 요소를 고결하게 보는 사상을 전하였다. 수백년간 영지주의적 복음은 물질에 갇히워진 신성의 궁극적 해방을 가르치고 전승하였다. 힐데가르트는 당시 바덴이나, 쾰른같이 교회 영향이 강한 곳에서 사람들에게 크게 호응을 얻던 카타리파(Katharer)의 교리를 알았다. 때로 그녀는 새롭고도 비관료적,비제도적으로 작용하는 신앙의 세계로부터의 상념들과 사상들에 호감을 가졌다. 그러나 분명히 한계를 그었다. 말씀의 성육신이론 때문에, 영혼은 고통당하는 신적 불꽃이 아니라, 예쁘게 잘맞는 옷처럼 영혼이 담겨져 있는 몸을 사랑한다. 또한 몸은 생동감(Vitalit t)을 채우는 영혼을 사랑한다. 그러므로 영과 육의 대립구도가 아니라, 영과 육의 조화로운 합일을 추구하는 모습이 힐데가르트 사상전반에서 울려나오는 주선율(Cantus firmus)이 된다.

    V. 나오는 말
    힐데가르트의 신비주의는 단순한 황홀경에 심취하는 침잠이 아니라, 삶을 위한 저항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그녀는 역사, 사회적 변화를 생태학적 기초위에서 추구하였다. 인간, 우주의 피조세계, 신성의 에로틱한 입맞춤은 다채로운 합창으로 울려퍼져야한다.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 우리가 저항해야 한다는 것을 힐데가르트는 말하고 있다.
    인간중심주의로부터 생태와 우주전체에 대한 의식의 전환을 촉구하는 소리는 최근들어 우리나라에도 '황토바람' 불 듯이 대두되고 있다. 인간을 지구의,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보았던 사고방식과 그에 따른 생태계 파괴에 대한 일차적 책임이 기독교와 서양문명에 있다는 소리도 드높다.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구구한 변명을 늘어놓기 이전에 성서의 참뜻을 몰이해하고 왜곡시켜온 책임앞에서 이러한 비판의 소리에 겸허히 귀기울이고 철저한 의식과 행위의 전환(Metanoia)을 추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기독교 전통에서 '삶에 대한 경외성'을 갖고서 자연전체를 친구로, 이웃으로 삼고 살아갔던 성자 프랜시스의 이야기는 자주 들먹거려져 왔다. 그러나 '청출어람'이라는 표현이 무색하게도 힐데가르트는 프랜시스에게 진정한 의미의 스승이었다. 단지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었다. 그녀의 이름이 기억되지 않았다는 것은 기독교 전통에서 흔히 그랬듯이 훌륭한 여성들이 잊혀져 있었다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가 의도했던 신학의 방향성이 두 번째 천년의 첫머리로부터 제대로 펼쳐질 수 있었다면, 두 번째 천년의 끝자락에 있는 현재 기독교의 모습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하나의 원이 그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감싸듯이
    신성도 만물을 그렇게 감싸안습니다."

    "하나의 원이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감싸듯이" 만물을 감싸는 신성, 푸르게 하는 그 힘을 우리는 필요로 한다. 그것을 추구하는 힐데가르트의 신학적 방법은 자연신학(theologia naturalis)이 아니라, 자연의 신학(theologia naturae)이다. 회색빛 시멘트와 콘크리트, 검은 빛 아스팔트가 사람과 자연의 유기체적 연관성을 나타내는 누런 빛 흙을 뒤덮는 우리의 현실세계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신학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복음의 내용을 자연스런 녹색의 푸릇함과 살아 향기가 베어나는 듯한 언어로 표현하는 힐데가르트의 신학세계에서 많은 도움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녀는 현대적 의미의 생태여성신학을 추구한 것은 아니며, 단지 그러한 척도로 그녀의 신학을 가늠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인간과 자연, 하나님의 어우러짐을 강조하는 그녀는 가히 생태여성신학의 선구자로 불릴 만하다. 다채로운 특성들의 조화를 추구하던 그녀는 그녀에게 붙여진 별명가운데 하나인 '여성 예언자'의 의미를 톡톡히 감당하고 있다. 그녀는 '명상과 관조의 삶(vita contemplativa)'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중세기의 세계에서 '능동적 삶(vita activa)'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두 삶의 양태의 조화를 추구함으로써 이미 '개혁주의적 신학'을 선취하였다고도 볼 수 있겠다.


    (기독교 사상 1998년 9월호)

    출처 : 코끼리의 일본만화 물구나무 서서보기
    글쓴이 : 코끼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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