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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을 응원하며 ... 향기나무 숲뽀종이 생각은 2013. 9. 18. 07:13
한국사회에서 운동권좌파의 큰 계류는 NL과 PD입니다.
결정적으로 운동권이 NL과 PD로 갈라진건 전두환의 쿠테타와 광주민주화운동을 탄압하는 과정에서의 악랄한 잔악성이 드러나면서부터였죠. 전두환 이전의 우리 운동권은 박정희의 독재를 반대하며 하나의 핵심가치를 공유하며 발전했지만 전두환 독재 이후로 미국의 제국주의 성향에 반대하며 NL과 PD로 갈라졌습니다. 사실 NL이 종북성향으로 규정되곤 하는데 실제 NL의 성향은 종북보다는 반미에 가깝습니다. 그들에 대한 사상과 행동에 관한 얘기는 담에 하기로 하구요.
암튼 NL은 민족해방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반미자주, PD는 민중해방을 중시하기 때문에 반자본친서민성향이 강하죠.
민노당의 탄생은 NL이 아닌 PD로 부터 시작됩니다. 그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민중해방,노동자자들의 권익보호에 앞장 서던 PD계열에서 민노당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NL이나 PD는 추구하는 비정규직,노동자,인권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상호간의 교류와 인식공유가 가능했죠.
그래서 PD에서 이왕에 진보정당 만드는김에 NL을 껴앉고 가기로 결정하고 민노총까지 껴앉고 민노당을 탄생시키죠.
민노당의 시작은 진보의 여러갈래가 한데 모여지며 탄생한 정당입니다.
단 트로이츠키주의를 주창하던 계열은 민노당에 합류하기 보단 사회당을 창당하고 거기로 빠져나갑니다.
범진보진영이 본격적으로 수면위로 올라온 계기가 되었고,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보수일색의 정당정치발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합니다. 실제로 노동자들이 많은 울산쪽은 민노당의 지지율이 제법 높았고, 한나라당-민주당으로 대표되는 기성정당에 실망한 대부분의 사람들, 정치인은 아니지만 진보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함께 힘을 합쳐 국회 10석을 만들어내는 파란을 일으킵니다.
계파간의 힘의 중심은 바로 NL로 쏠리게 됩니다. 원래 운동권시절부터 PD보다는 NL보다 힘이 강했고, 민노당이 창당되고 NL계열이 조직적으로 입당하고, 그 세를 키워내게 됩니다. 안그래도 자신들이 시작한 정당에서 주도권을 잃어가는걸 탐탁치 않게 생각한 PD는 일심회사건을 계기로 하나둘 이탈하기 시작합니다. 재밌는 사실은 NL보다는 PD에 가까울수밖에 없는 민노총의 경우엔 PD보다는 NL과 더 가까웠습니다. 오랜동안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온 민노당 NL계 수뇌부들과 관계를 끊을수 없었고, 실제로 그들이 민노당의 주류라는 점에서 민노총입장에서는 버릴수 없는 카드였죠. 뭐 권영길로 엄밀히 따지면 민노총계구요.
당시 민노당의 의원들, 지명도 있는 의원들은 사실 모두가 NL계열은 아니었습니다.
이정희 조승수 노회찬 심상정 강기갑 권영길이 대표적인 민노당계 의원인데
조승수,노회찬,심상정은 대표적인 PD계열이고
강기갑의 경우엔 농촌노동운동을 했고 그나마 권영길이나 이정희정도가 NL과 친한편이죠. 이정희같은 경우엔 확실히 NL계에 가깝기도 하지만 권영길의 경우엔 당내주류로서 NL을 포용하려고 하긴 했지만 딱히 NL이라고는 보기 힘듭니다.
강기갑이 탈당하지 못한 이유는, 가장 대표적인 민노당의 비례대표의원이었고, 또한 NL의 지지도 왠만큼 받았기 때문이고 권영길의 경우엔 NL에게 받은것도 있고 하니 나오지 못한것이죠. 이정희정도는 뭐 NL이라고 볼수도 있구요.
서로 성향이 다른 세력들이 합쳐져 범진보진영으로 출발한 민노당은 그 힘의 균형이 깨지면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 계기는 일심회 사건과 지난 대통령후보 경선과정에서 드러난 민노당 NL계 수뇌부의 패권주의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대선에서 지지율3%로 참패한 민노당은 심상정을 주축으로 비대위를 구성하고 NL계에게 종북성향과 패권주의를 거둘것을 요구합니다만, NL계에서는 도리어 더한 패권을 외치며 자주성을 강화할것을 요구합니다.
이미 민노당을 장악했다는 NL계의 패권주의와 타협이 안되는 당내정치에 실망한 PD계 인사는 전격적으로 탈당을 선언하고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게 됩니다. 이미 먼저 탈당하여 신당창당의 기틀을 마련중이던 조승수와 함께 PD계는 새로운정당을 창당해내고
의욕적으로 총선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강한 여풍속에서 무조건 당선되리라 생각했던 심상정과 노회찬이 차례로 석패하자 다행인것은 당해산조건인 2%를 넘어 당해산을 막았다는것이죠.
도저히 메울수 없는 PD와 NL의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고 새로이 창당된게 진보신당입니다.
사실 NL이 잡고 있는 민노당내의 헤게모니는 PD계에서 극복하기 힘들었죠.
노,심,조로 대표되는 PD인사들과 홍세화박노자진중권김규항 등의 재야의 진보인사들이 당원으로 합류하여 진보신당을 탄생시킵니다.
이들이 놓치지 않는 하나의 사상은
종북사상에 대한 절대적인 배척이었습니다.
이것이 창당의 원인이었고, 그들의 정체성이었으니까요. 이것만 보더라도 진보신당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좌파진영이 결코 종북선향이 아니라는것이 증명되는 일이며 진보진영에 대한 추악한 색깔칠은 여전한 냉전이데올로기와 맥카시즘의 연장선이라고 볼수 있죠.
당내위기는 계속 지속되었으며 노,심이 등판한 지방선거에서도 차례로 석패하며 당의 존폐위기까지 가며 그들 스스로에의 존립에 대한 회의가 불고 민노당과 다시 합당하자는 얘기가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의 정적이나 다름없는 유시민의 국민참여당과도 합치자는 말이 나오고, 앞으로의 선거에서 민주당주도의 야권연대에 적극적으로 합류하자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당 정기대회에서는 독자파로 갈것을 천명합니다.
그와중에 조국교수도 비판을 하였으며 진중권은 '사회주의 동호회'라고 비판을 합니다. 보수계에서 공격하는 사회주의 동호회라는 말은 알고보면 한때 당원이었던 진중권에게서 나온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회의는 결국 독자파의 길을 걷기로 의결하고 통합파였던 노,심,조는 탈당하게 되고 유일한 원내의원을 잃게 되었죠.
사실상 진보신당을 지탱해오던 노,심,조의 이탈은 진보신당에 심각한 위기가 왔음을 알려주게 됐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2.94%의 정당지지율을 확보할수 있었던것도 노심조에 대한 지지가 컸는데 그들이 탈당했다는것은 이제 원내1석은 커녕, 단 당해산을 걱정해야할 꼴이 됐다는것이죠.
결국, 작금의 진보신당의 위기는 야권연대에 참여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연대의 선택이 더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당원으로써 당의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할 책임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의 진보신당을 지지하고 응원하는겁니다.
야권대연대에 참여했다면 노심조중에 하나는 의원이 됐을것이고, 진보신당의 존립은 계속 이어갈수 있었겠지만
작금의 야권대연대는 굉장히 폭력성이 짙습니다.
거대 정당인 민주당 주도의 야권연대는 폭력성 뿐만 아니라 진보의 기치를 잃어버릴 가능성도 높습니다.
정책적인 간극이 큰 민주당계와의 합당은 이해가 안가는게 많습니다.
특히나 사표론을 주장하며 진보계를 잡으려 했던 유시민과의 합당, 이어질 민주당과의 연대에서 진보계열의 힘은 점점 적어질수도 있으니까요.
사회당과의 합당도 그런 연유입니다.
사회당도 결국은 사회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정당이긴 하나 트로이츠키주의를 내건 혁명적진보정당이라 다소 온건한 진보신당과 맞지 않을수도 있지만 서로가 바라보는 사회의 모습은 비슷하죠. 전 사회당과의 합당을 찬성합니다.
당이 없어지더라도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려는 용기가 멋있고 가상하니까요.
물론 권력의지가 없는 당은 그 가치가 없고, 사회주의 동호회라는 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진보의 존재는 앞장서 힘있는 자들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죠.
거대정당의 횡포와 맞지않는 이념속에서 당의 색깔을 지워가며 야권 대연합에 참여하는건 반대합니다.
심상정때문에 진보신당을 지지하게 됐지만, 그가 떠난 후에도 계속 지지하는건 그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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